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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차라리 ‘후쿠시마 오염수 시음회’ 열고, 줄지어 원샷을 [아침햇발]

등록 2023-07-09 16:01수정 2023-07-10 08:52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대게가 있는 수조물을 떠 마시고 있다. <한국방송>(K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대게가 있는 수조물을 떠 마시고 있다. <한국방송>(K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정남구|논설위원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때 나는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지진해일(쓰나미)로 2만명의 희생자가 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6만여명이 고향을 등지는 대재난에서 나는 주변부에 있었다. 특파원들은 사고 원전 근처로 여러차례 취재를 다녀왔다. 우리는 단기간 피폭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쉽게 구하기 힘든 ‘샘플 집단’이었다. 우리는 그해 서울 원자력병원에 와서, 몸에서 방사선이 나오는지, 염색체 변이가 얼마나 생겨났는지 자료를 모두 제공하기로 하고 무료로 검진을 받았다.

방사능 오염지대에 살면 방사선에 대해 공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불안을 완전히 벗어나려면 오염지대에서 떠나야 하는데, 그러기엔 비용이 많이 든다. 일부 위험은 감수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비용을 치르는 선택을 하려면 판단 근거가 필요하다. 나는 원전 근처로 취재하러 갈 때는 두꺼운 옷을 입고 필요한 때만 실외에 머물며, 일정을 최소화해 피폭량을 줄였다. 먹을거리는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됐더라도 수치를 모두 공개하는 생활협동조합에서 불검출 재료를 최대한 구매했다. 원자력병원 검사에서 내겐 다행히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뒤 3년 가까이 아이들과 함께 도쿄에서 머문 선택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방사선은 원자핵이 불안정한 원소가 안정돼가는 과정에서 뿜어내는 것이다. 세포를 훼손한다. 원시 지구에는 방사선 탓에 생명체가 살 수 없었다. 방사능 연구를 하여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는 둘 다 방사선 피폭이 직간접적 원인이 되어 숨졌다. 불행하게도 인류는 인공으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핵폭탄을 발명해 원시 지구를 재현하는 길을 열었다. 핵발전도 완전한 격납에 실패하면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 사고가 바로 그 사례다. 과학의 이름으로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부르짖던 이들이 지금도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나는 역겹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1977년 권고에 담은 방사선 방호의 기본원칙은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한 피폭량을 낮게 하라’(ALARA)는 것이다. 방사능 관리 기준치는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불가피하다면 ‘그 정도 피폭 위험은 감수하자’는 것이요, 버릴 수밖에 없다면 그 정도는 받아들이자는 ‘배출 허용치’일 뿐이다. 군의관으로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뒤 평생 6천여명의 피폭자를 치료해온 일본 의사 히다 슌타로(1917~2017)를 2013년 9월 만났다. 피폭자 가운데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무력증에 빠져드는 ‘부라부라병’ 환자를 많이 본 그는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물을 통해 일어나는 내부 피폭은 양이 적다고 해도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지구의 바다에 매우 해로운 일이다. 결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물론 바다는 매우 커서, 버려지는 삼중수소가 우리나라 연안 수산물에 방사능 수치상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더라도 장기간 오염수를 바다에 계속 버릴 때,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바로 그 불안에 공감하는 데서 일을 시작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생선회 먹방을 열고, 김영선 의원은 수조의 물을 마시는 쇼를 했다. 불안해하는 이들을 불완전하고 영혼 없는 ‘과학’의 이름으로 조롱한 꼴이다.

며칠 전 후쿠시마현 남쪽 내륙에 있는 도치기현의 누리집에서 수산물과 농산물 방사능 검사 결과를 살펴보았다. 일부 은어와 산천어에서, 나무에 재배한 표고버섯에서 세슘이 ㎏당 20베크렐 안팎씩 검출됐다. 강에서 잡은 은어, 산천어에서 세슘이 나오는 것은 원전 사고 초기 대기 중으로 방출된 것이 땅에 떨어졌다가 물을 따라 강으로 흘러들고, 먹이사슬을 통해 상위 포식자의 몸에 축적된 까닭이다. 방사능이 기준치 이하니까 ‘안전’하다고 일본 정부는 유통을 허용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그걸 ‘안심’하고 먹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기준치 이하니까 ‘안전’하다고 말하는 정부·여당의 고관대작들에게 권한다. 그렇게도 자신이 있다면, 차라리 후쿠시마 오염수 시음회를 열고 일렬로 서서 한명씩 원샷을 해서 국민을 ‘안심’시켜보시라. 그럴 자신이 있는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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