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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누가 자유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세력’인가?

등록 2023-09-06 19:18수정 2023-09-07 02:39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 삼창을 마친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 삼창을 마친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룸에서] 이세영 | 전국부장

자유센터는 한국자유총연맹의 본부 건물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1964년 서울 장충동 남산 자락에 들어섰다. 1966년 제12회 아시아민족반공총회, 1967년 세계반공연맹 총회가 이곳에서 열렸고, 1970~80년대엔 관 주도 이념 행사나 궐기대회, 공무원·학생 대상 반공 교육 장소로 활용됐다. 1990년대부터는 연맹 사무 공간을 제외한 건물 대부분이 웨딩홀과 식당, 양주클럽, 택배회사 등에 임대됐는데, 냉전이 해체되고 남북 간 대결 구도가 약화하면서 행사 공간으로 쓰임새가 줄어든 결과였다.

한동안 한국 반공주의의 조락을 상징하던 이곳이 돌연 활기를 띠게 된 건 ‘자유’를 취임 일성으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지난 6월28일엔 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이곳을 찾았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24년 만이었다. 대통령 방문도 이례적이었지만, 압권은 대통령의 말이었다.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고백이요, 선언이었다. 자신이 줄곧 강조해온 ‘자유’라는 화두가, 자율성과 다원성이 핵심인 정치적 자유주의의 근본이념이 아니라, ‘자유=반공’이란 등식에 기초한 냉전 자유주의, 우익 국가주의의 그 ‘자유’임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른바 ‘반국가 세력’을 겨냥한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40여일 뒤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란 표현으로 한층 구체화했다. 전임 정부 핵심 인사들을 위시해, 자신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세력 전체에 ‘공산전체주의’라는 생경한 이념 언어를 덧칠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말한 ‘공산전체주의’는 우익 전체주의(나치즘)와 짝을 이룬 좌익 전체주의(볼셰비즘)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전체주의 비판에서 빌려 온 것으로 짐작된다. 이때의 전체주의는 ‘대중운동’을 본질적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독재’나 ‘권위주의’와는 구분된다. 거기엔 대중의 열광과 자발적 복종, 확신에 찬 행동이 동반된다.

중요한 건 아렌트가 전체주의적 대중의 출현을 ‘외로움’이란 감정 상태와 연결 짓는다는 사실이다. 그가 볼 때 대중은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체’다. 원자화된 개인을 대중으로 결합시키는 것은 고립돼 있다는 사실, 거기서 느끼는 외로움인데, 바로 그 외로움이 ‘최악의 경우’만을 생각하는 극단주의로 인간을 밀어붙인다는 게 아렌트의 진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전체주의 운동을 키워낼 토양은 좌파보다는 우파 쪽이 더 비옥해 보인다. 스스로를 ‘애국 진영’이라 일컫는 아스팔트 우파의 주력이 유튜브 생태계에 기생하는 정치 낭인들, 퇴직 언론인,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60~70대 남성 노인층인 것을 봐도 그렇다.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념전쟁에 신바람 난 것도 궁핍과 고립과 외로움과 싸우는 냉전 우파들이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 볼 때, 전체주의 운동은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조직에 대한 욕구를 가진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아렌트는 그것이 “노인 등 사회적 주변부의 한계 경험이었던 외로움이 점점 더 많은 대중이 매일 겪는 일상 경험이 되었다”(‘전체주의의 기원’)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고 했다.

지금 단언할 수 있는 건 정부 지원을 받는 법정 단체 가운데 전체주의 운동의 조직 기반으로 활용될 위험성이 가장 큰 조직이 자유총연맹이란 사실이다. 돈과 조직, 인정에 목마른 이들이 17개 시·도 지부와 228개 시·군·구 지회, 3300여개 읍·면·동 위원회까지 갖추고 정부·지자체의 1년 보조금만 138억원(올해 기준)인 이념운동 조직을 두고 볼 리 없기 때문이다.

자유총연맹 역시 5년 전 정관에 도입된 ‘정치적 중립’ 조항을 지난 3월 삭제하고, 6월엔 극우 성향 유튜버 20여명을 자문위원에 위촉하는 등 정치조직화를 위한 정지 작업을 마쳤다. 심지어 극우 유튜버들의 영입 창구로 의심받는 사무부총장은 연맹의 ‘정치적 중립’ 정관 삭제가 윤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전체주의 세력은 누구인가?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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