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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통계청 1년간 뒤집더니…‘표본 조작’ 어디로 사라졌나

등록 2023-10-05 09:00수정 2023-10-05 11:43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통계자료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결과에 대한 해석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다. 전문가나 연구자가 왜곡하거나 조작해도, 보통 사람은 문제를 찾아내기 어렵다. 통계 작업에 문제가 있다고 공격하는 주장 역시, 일반인으로서는 그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복잡해서 좀처럼 이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통계 조작’ 같은 언론의 머리말만 기억한다.

소득통계 문제는 2018년 8월 시작되었다. 소득분배 지표가 예상보다 나쁘게 나오자 당시 정부와 청와대는 표본이 1년 전과 달라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이때 전 정부 통계청장인 유경준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정책 결과가 좋지 않다고 통계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경제학자로서 또 전임 통계청장으로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분석 결과가 가설과 다르게 나오면 가설이 틀렸는지 검토해야겠지만, 데이터에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데이터가 전체 집단에서 일부 추출한 표본(샘플) 자료인데다 그 표본 자체가 크게 변경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분배지표는 5천여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통계청의 분기별 가계동향조사를 통해 계산되는데, 통계 개선을 위해 1년 사이에 표본 규모가 50%가량 늘고 조사 대상자도 절반 이상 바뀐 상태였다. 정부는 표본 변경 때문일 수 있다고 했을 뿐, 추가로 작업해 다른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다.

문제를 제기한 유 전 청장은 2020년 국회의원이 되었고, 정치인 유 의원은 이제 우려를 넘어 통계 조작의 구체적인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국정감사에서 강신욱 통계청장이 취임한 이후 조사 대상 표본을 다시 바꾸고, 의도적으로 샘플을 조작해 소득분배 지표가 좋게 나오도록 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전체 표본에서 저소득층 가구의 비중을 인위적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근거는 오로지 표본에서 저소득층 가구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뿐이었다. 유 의원이 ‘꼼수’를 부렸다고 하자, 보수 언론들은 통계 ‘마사지’ 혹은 ‘조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정권교체 후 감사원은 대대적인 통계 감사를 시작했다. 몇차례 기간을 연장하고 감사팀까지 교체하며 1년 동안 통계청 실무자까지 샅샅이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를 지난 9월15일 발표했는데, 정작 소득조사 ‘표본 조작’ 문제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유 의원은 이 문제가 빠져 아쉽다고 했지만, 지금 감사원이 어떤 감사원인데 이것을 빼고 조사했겠는가? 빠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있을 수 없었던 문제였다.

원래 통계청은 고용이나 노동 조사에 사용되는 가구표본을 이용해 소득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사 신뢰성 문제가 매년 지적되자 2018년 아예 소득조사에 맞는 전용표본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여러차례 전문가 의견도 수렴하고, 50여명이 참석하는 내부 아이디어 회의도 했다고 한다. 모두 강 청장 취임 전 이루어진 일이다. 표본 구성에 관한 결정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 비중이 작다고 분배지표가 좋게 나온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전체 가구 소득 통계가 없는데 어떻게 소득이 낮은 가구만 골라 뺄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 통계청 보도자료나 국감 답변을 보면 이런 사실을 유 의원에게 여러번 설명한 듯한데, 그래도 조작 의혹 제기는 계속되었다.

애초 근거 없는 문제를 조사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그랬는지, 감사원은 다른 문제 두가지를 지적했다. 2017년 상반기 가구 소득에 대한 가중치 적용과 가구단위 소득 대신 개인단위 소득 분석이다.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조작이라 보기 어렵고 조작할 이유도 없는 문제들이다. 진실은 몇년 뒤 법원에서 밝혀질 테지만 합리적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먼지털기식 감사를 하고 또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진다면 국가적으로 상당한 손실이다. 안 그래도 적극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공무원은 더 위축될 것이다.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무언가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관가에서는 찾아서 일하는 것은 고사하고, 상급자 지시도 기록이나 녹음으로 남겨 놓으려고 한단다. 한국의 빠른 발전 요인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행정이 정치에서 독립되어 있고 덕분에 정부의 역동성이 강했다는 점을 많은 학자가 꼽는다. 극한 정치 대립으로 정치가 불능인 마당에, 남아 있는 행정의 역동성마저 사라진다면 기대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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