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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족 다 데려가고 싶은 병원 [슬기로운 기자생활]

등록 2023-10-19 14:14수정 2023-10-20 02:38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1000명 이상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지난 15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1000명 이상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지난 15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임재희 | 인구복지팀 기자

“리뷰 쓰려고 로그인했습니다. 진짜 만족스럽습니다. 가족 다 데리고 오고 싶었습니다.”

유명한 맛집 평가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얼마 전 포털사이트에서 치과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평가다. 치과 하면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아파서 무서웠는데, 나이가 들면서 치과는 비용도 무섭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치과에 가족까지 데려가고 싶다고 하다니.

‘건강보험 치료가 많은 치과.’ 누리집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문구가 이 치과의 인기 비결을 보여주는 듯했다. 간단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어차피 아플 거라면 비용 걱정이라도 덜고 싶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비급여 가격까지 미리 확인한 뒤 이 치과를 찾았다. 진료가 끝나고 의사로부터 들은 이 한마디에 치과를 계속 다니고 있다. “이 부위를 치료하자면 할 수는 있는데, 치과에선 건강보험으로 커버(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다른 과목(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으면 건강보험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으니까 의뢰서를 써드릴게요.”

병원을 찾을 때는 저마다 기준과 방법으로 의료기관을 선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9년 11월 병원을 이용한 외래환자 2401명을 대상으로 해당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어떻게 정보를 획득했는지 조사해 보니, 친구·이웃 등 지인(25.3%)이나 가족(24.9%)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는 사람이 절반이었다. 이어 인터넷 사이트(12.8%), 병원 내 지인(12.1%), 근처에 살거나 일해서(9.1%)라는 답변 순이었다. 믿을 만한 사람의 경험이나 정보를 토대로 맛집보다 꼼꼼하게 의료기관을 고르고 있다.

동네 치과 누리집을 샅샅이 뒤졌던 이야기를 꺼낸 건, 의사단체 등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내건 ‘의사 유인 수요’ 이론 때문이다. 의대 졸업생이 늘어 배출되는 의사가 늘면 의사들 사이에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수익을 내기 위해 의사들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유도하게 될 거란 주장이다.

한국은 전체 의사 가운데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비중이 지난해 말 기준 10.2%에 불과하다. 의료를 계속 민간 시장에만 맡겨놓는다면 의사 유인 수요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비용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실손보험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은 적정 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을 찾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 언론에선 국립대와 소규모 의대를 중심으로 512명을 늘리는 방안이 논의돼온 의대 정원 증원 규모가 1000명 이상 될 거란 보도가 나온다. 꽉 막혀 있던 의대 정원 확대 공론화는 반갑지만, 의료서비스 소비자인 국민이 늘어나길 바라는 건 의대생이 아니라 적정 진료를 제공해줄 의사다. 특히 시장논리에 따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해진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절실하다. 제때 치료를 받을 의료기관이 없어 찾아볼 리뷰가 없거나, 리뷰를 찾아볼 겨를도 없이 찾게 되는 응급실·중환자실 의사 말이다. 다시 불붙은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단순히 보궐선거 패배 이후 꺼내 든 국면전환 수단이 아니라면, 보건복지부는 늘어날 의대생들이 어떻게 지역과 필수의료에서 제 역할을 다하게 할 것인지 그 대안도 보여줘야 한다.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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