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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검찰의 특활비 감추기…먹칠당한 정보공개

등록 2023-10-23 18:53수정 2023-10-24 02:40

지난 12일 오후 최윤원 뉴스타파 기자와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이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특수활동비 지출증빙서류를 판독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지난 12일 오후 최윤원 뉴스타파 기자와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이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특수활동비 지출증빙서류를 판독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뉴스룸에서] 이재명 | 기획부국장

한때 업무추진비(과거엔 판공비로 불렸다)는 쌈짓돈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공무 수행에 사용하도록 한 예산이지만 실제로는 접대비, 비자금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가족과 식사비, 지인들과 술값, 유권자에게 주는 선물로 지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영수증 같은 지출 근거 서류를 남길 리 없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1998년 시행된 정보공개법 제정 뒤였다. 2000년 시민단체들은 ‘판공비 공개운동 네트워크’를 꾸려 중앙부처와 120여개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대다수가 공개하지 않았고 지출 증빙 자료도 없었다.

끈질긴 공방과 소송 끝에 일부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렇게 오남용 사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자발적으로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는 내용의 국무총리 훈령을 공포했다. 노 전 대통령도 직접 나서 “정보를 공개하면 그 뒤에 특권이 숨을 수 없고, 특혜가 숨을 수 없다”며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모든 공공기관장의 업무추진비를 자발적·주기적으로 공개하게 된 계기였다.

전세계 국가 절반가량이 국민에게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에의 접근·수집·처리를 보장하는 정보공개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활용도가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대상 기관도 넓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데다 억눌렸던 정보 수요가 폭발한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정보공개청구 건수는 해마다 10% 이상씩 늘어 지난해엔(180만건) 시행 첫해에 견줘 70배 가까이 늘었다. 앞서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한 유럽과 미국에선 주로 자신에 관한 기록이나 경쟁 기업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권력·예산 감시와 같은 공공 이익을 위한 정보공개가 활성화돼 있다. 업무추진비뿐만 아니라 의원들의 외유성 국외 연수에 제동이 걸린 것도 그 덕이다. 아파트 분양원가, 대학 등록금 사용 내역, 학교 급식 원산지, 항생제 오·남용 실태 등 실생활과 관련된 정보공개청구도 활발하다.

하지만 한계도 적지 않고 개선할 내용도 여럿이다. 공무원들은 어떻게든 비공개의 문턱을 높여 정보를 숨기고, 고의적·반복적으로 비공개 결정을 내린다. 이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사례가 최근 논란이 인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다. 검찰은 더는 업무추진비를 쌈짓돈으로 쓸 수 없게 되자 수사·정보활동비 명목의 특활비 일부를 그 용도로 사용하고 이를 감추려 여러 꼼수를 동원했다. 처음엔 아예 자료가 없다고 잡아뗐다. 이른바 ‘정보 부존재’ 통보다. 이 경우 정보가 존재할 개연성을 청구자가 입증해야 한다. 전형적인 ‘법꾸라지’(법+미꾸라지) 수법이다. 시민단체가 관련 기록을 작성·보존하게 돼 있는 법 조항을 들이밀자 그때야 검찰은 일부 자료의 존재를 시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계속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수사 기밀’이라는 이유를 댔다. 시민단체는 2년여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끝내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검찰은 법원 판결과 달리 기록의 많은 부분을 까맣게 가리고, “잉크가 휘발됐다”(한동훈 법무부 장관)며 백지 카드전표를 내놓기도 했다. 시민단체와 언론이 먹칠된 문서를 불빛에 비춰 보고, 암호 해독에 가까운 수고를 들여 찾아낸 오·남용 사례엔 “일부 직원의 오류”라거나 “일단 특활비를 사용한 뒤 사후에 보전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활비 일부가 검찰 직원들의 식사, 술자리 회식비, 격려금 등으로 쓰인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휴대폰 요금이나 사무용품 임대료 등에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 간부들도 사석에선 이런 실태를 부인하지 않는다. 검찰이 먹칠로 가린 건 수사기밀이 아니라 치부였다.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정보공개법에 먹칠한 행위다.

정보공개를 대하는 검찰의 악의는 통계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중앙부처를 상대로 제기된 정보비공개 취소 소송은 모두 165건인데 그중 대검찰청이 63건으로 압도적 1위였다.(2위 경찰청 25건) 패소율 또한 가장 높다. 검찰은 결론이 난 43건 중 27건(60%)에서 패소했다. 이쯤 되면 비공개를 남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비공개는 권력이 느끼는 불안의 크기를 알 수 있는 척도다. 공직자가 고의로 정보공개를 거부하거나 법원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도록 정보공개법을 보완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을 겨냥한 것이다.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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