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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세계인 영혼 울린 ‘영화음악의 거장’

등록 2023-11-09 19:18수정 2023-11-10 02:38

[나는 역사다] 엔니오 모리코네 )1928~2020)

1928년 11월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막연히 의사가 되고 싶었다. 11살 되던 해,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가 말했다. “엔니오, 이제부터 트럼펫을 불어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는 먹고살기 힘들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와 아버지는 밤마다 재즈 악단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따로 봉급은 없었고, 클럽을 찾는 미군 병사의 팁을 받아 생활했다. 즐겁지 않은 기억이었단다.

모리코네는 음악원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않았다. “자네는 작곡과로 옮겨야겠네.” 과제물을 본 선생님이 말했다. 훗날 작곡가가 되고 나서는, 자기 곡을 연주하기 위해 아버지와 친구들을 스튜디오로 불렀다. 아버지가 나이 들어 트럼펫을 옛날만큼 잘 불지 못하게 되자, 모리코네는 한동안 자기 음악에 트럼펫 소리를 넣지 않았다. 다른 연주자를 부르면 아버지가 상처받을까 봐서였다.

음악원에서는 순수예술로서의 음악을 했다. 한동안 전위음악 작곡가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먹고살기 위해 편곡 일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영화음악 작곡가가 됐다. 한참 지난 뒤 음악원 시절에 그를 아끼던 선생님이 영화음악 작곡가로 성공한 그를 만나 말했다. “치유될 거야, 자네는 치유될 걸세.” 대중음악이 병이라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영화음악을 하면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 순간이 자주 있었다. 감독과 제작사가 무리하게 개입할 때도 잦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업을 맡아도 최선을 다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함께 서부극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를 하면서부터였다. 휘파람과 하모니카처럼 평범하지 않은 다양한 소리를 시도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 천국’ 등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수백편의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2020년 7월 숨지기 직전 작성한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셀프 부고’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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