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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당직 순번이어서 2030 엑스포(EXPO·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생중계 방송을 뉴스룸국 사무실에서 쭉 지켜봤다. 29일 새벽 1시30분이 거의 다 돼 화면에 뜬 ‘119(리야드) 대 29(부산)’란 결과는 믿기지 않았다. 부산 승리 가능성은 작다고 봤지만 ‘29’라는 숫자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사실을 취재해 진실을 보도하도록 훈련받는 직업을 가진 나 역시 스스로를 희망고문 중이었구나 싶었다.

주요 재벌그룹이 유치전에 뛰어든 터라 그간 판세는 어느 정도 읽고 있다고 자만하던 터였다. 각 그룹 최고위층(C레벨) 임원들 입에선 온도 차는 있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전망이 제법 나왔다. “시작할 땐 2등도 힘들다 봤는데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해볼 만합니다.” “결선에 가면 판이 뒤집힐 수도 있대요.” 물론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열심히 할 뿐이죠”라며 말을 아끼는 이들도 있긴 했다.

상대적으로 엑스포와 한발 떨어져 있는 경제산업담당 데스크는 그럴 수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희망고문을 당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부의 외교력·정보력·분석력이 형편없는 수준이거나, ‘제대로 된 정보’가 올라가지 않는 정보 불통 상황에 놓여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윤 대통령은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저희가 느낀 (상대국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겨레는 내년 국내외 경제의 키워드로 ‘폴리코노미’를 제시했다. 정치가 경제를 뒤흔드는 상황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국들이 내년 큰 선거를 치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멀게는 2008년 금융위기, 가깝게는 2016년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세계 경제질서는 급변했다. 자유무역의 자리를 보호무역이 꿰차고, 시장 자율보다 정부 산업정책의 중요도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기업과 정부는 서로 뒤엉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변모했다.

이러한 질서 전개는 한발 떨어져 냉정하게 살펴볼 대상이면서도, 그런 자세를 취하기엔 상황 전개가 급박하다. 당장 미국의 산업정책 구심력에 따라 북미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4대 그룹의 한 최고위급 임원은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면 무척 난감한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엑스포 유치전은 이렇게 변모한 세계 질서의 한복판에서 진행됐다. 과거 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컵 유치전과는 성격과 파장이 다르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고배를 마시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정부 전략·예측·분석의 정밀성과 신뢰도는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29’라는 숫자는 단지 승패의 ‘결과’만을 담고 있지 않다. 국제 질서 재편 흐름에 민감한 신용평가기관이라면 국가신용등급에 이번 개표 결과를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법하다.

유치 실패에 따른 아쉬움을 달래거나 유치 과정에서 얻은 유·무형의 과실을 침소봉대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우리 정부가 실패한 원인을 차분히 되돌아봤으면 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윤 대통령은 각 부처 보도자료들부터 살펴보시라. 언제부턴가 주요 사건, 핵심 정책과 관련한 부처 보도자료가 장관 동정 자료처럼 작성되고 있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즉 국민과 소통하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인데도 그렇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최근 행정망 장애 사태의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는 보도자료 들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1월24일(금) 오후 한-영 디지털정부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위한 영국 출장에서 귀국하자마자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TF’ 제2차 회의를 주재하였다.”

5공화국 시절 ‘땡전 뉴스’와 같은 작법이다. 보도자료에서도 듬뿍 묻어나는 ‘장관 중심성’과 ‘국민 무신경’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런 퇴행적 문화 아래에서 해당 분야 공무원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사태의 진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그 결과를 제대로 보고할 수 있을까. 윗선 심기를 살피거나 눈치를 보는 데 에너지를 더 쏟지나 않을까 하는 건 기자의 괜한 우려일까.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든 공무원, 기업인들도 비슷한 심정일 수 있다. 이런 정부를 경제인들도 불안하게 보고 있다.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