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허버트 스펜서 (1820~1903)
하고 싶은 공부만 하던 괴짜였다. 칸트의 철학서도, 고전 ‘일리아스’도 앞부분만 살짝 읽다 말았다. 하고픈 말은 많았다. 직장도 그만두고 평생에 걸쳐 책을 썼다. 글 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당대의 지식인들이 그를 후원했다. 스펜서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살다 1903년 12월8일 세상을 떠났다.
후세의 평가는 박하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스펜서는 한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진부한 사상가”였다. 고향 영국에서 금세 잊혔거니와, 그의 사상은 동아시아에서 살아남았다. 근대 지식인들이 스펜서의 이름으로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그 유산이 20세기 늦게까지 한국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박노자는 지적한다.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한 사상가로 알려졌다. 이름은 진화론이지만 찰스 다윈의 이론과 닮다 말았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쓰기 전부터 스펜서는 ‘진화’에 관해 썼다.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은 다윈의 진화론에 없는 내용이다. ‘적자생존’은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일 뿐, 약하고 강하고를 따지지 않는다. 다윈의 이름을 빌린 이른바 ‘사회적 다윈주의’가 19세기와 20세기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사상이었다니, 다윈이 억울할 노릇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스펜서도 억울할지 모른다. 문명의 발전 단계를 나누었다고는 하지만,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려던 뜻은 없었다. 스펜서 자신은 군국주의라면 질색이었다. 사회주의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몰강스러운 경쟁도 싫어했고 협동조합이 대안이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오늘날 한국 사회 기준으로 보아도 그닥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다.
‘철학 이야기’를 쓴 윌 듀런트는 스펜서의 철학이 연구자의 철학이라기보다 생활인의 사상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의) 무산자와 실업가가 그의 주장을 경청했다.” 어쩌면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간 보통사람들이 스펜서와 진화론의 이름을 빌려 자기들 처지를 합리화했던 것은 아닐까. 시대가 지나며 스펜서가 잊힌 것도 그런 까닭이리라.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