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의 보르헤스(1973). 위키미디어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도서관이란 완전한 관대함이다.” 볼라뇨는 말한 적 있다. “강제수용소가 인간의 최악을 상징한다면 도서관은 인간의 최선을 상징한다.” 한편 보르헤스는 “도서관은 무한하다”고 단언한다. “우주의 다른 이름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이런 라틴아메리카풍 찬사들이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가 도서관에 가지는 관념도 딱히 다르지 않다. 도서관은 당연히 관대하고 무한한 곳이라고 가정된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꽤 당황할 것이다.
2023년 주목할 만한 도서관 뉴스가 두건 있었다. 하나는 5월 서울의 한 도서관이 이용자들이 신청한 재테크 관련 도서 구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공지한 것이다. 구매 도서는 특정 분야가 5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내규가 있으므로 이 조치 자체는 통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뉴스는 마치 도서관 이용자들조차 재테크에 몰두하는 세태, 또는 재테크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세태에 제동을 거는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또 하나는 10월 장서 45만권을 폐기하려던 울산대의 계획이 알려진 것이다. 이 뉴스는 대학 도서관이 그렇게 많은 책을 버려도 되는지 논란을 일으켰다.
첫째 뉴스는 도서관의 도서 구입 예산에 관한 것이고, 둘째 뉴스는 도서관의 수용 능력에 관한 것이다. 두 뉴스는 우리가 도서관을 관대하고 무한한 천국이 아니라 제한된 예산과 공간을 가진 현실적 존재로 봐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렇게 요약하면 끝나는 것일까? 두 뉴스 어디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지만, 읽는 사람 모두가 감지했던 진짜 함의는 따로 있다. 그것은 과연 우리의 도서관이 이른바 ‘영속적 가치가 있는 책들’을 구입하고 유지 보관할 능력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도서관 이용률은 해마다 감소하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용자의 구매 희망 도서에, 예컨대 재테크 관련서에 제한을 두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재테크 책 구매 신청이 너무 많다면 왜 다른 분야는 신청이 저조했는지도 질문되어야 옳았다. 진짜 문제는 ‘저조한 쪽’에 있는지도 모른다. 도서관들은 주민 방문을 늘리기 위해 건물 일부를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등 안간힘을 쓴다. 이는 서가 공간의 축소로 이어지며, 그 결과 더 많은 책이 버려진다. 1순위 폐기 리스트는 10년간 대출 실적이 1회 이하인 책들이다. 어떤 책들이 여기 올라가는지 알면 지식인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니체, 하이데거, 들뢰즈 등등. 인근 도서관을 향해, 이 리스트는 잘못됐고 다른 책을 버려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45만권 폐기에 관한 한탄 중 책을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시원하게 제시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아둘 어떤 장소를 만들자든지 나중에 이용할 사람을 위해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용을 위해 모아두는 장소가 바로 도서관이었던 것 아닐까. 나중에 이용할 사람이란 건 픽션일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서의 대량 폐기 문제는 선진국형 난문으로, 아직 명쾌한 해결책은 없다. 주기적인 폐기가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가치 있는 책’이 버려지는 것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런 책일수록 이용자가 찾지 않고, 따라서 더 빨리 버려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책에 관한 모든 이슈가 그러하듯, 이 역시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라는 근본 문제를 피해 가지 못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