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서핑에서 중요한 것은 파도를 잡는 타이밍이다. 파도를 제때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손으로 저어(패들링) 보드의 속도를 높여야 파도에 올라탈 수 있다. 파도를 뒤늦게 발견하고 팔을 저어봤자 파도에 휩쓸릴 뿐이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 28)에 다녀왔다. 현장에선 지난 수년간 세를 키워왔던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파도가 실시간으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매일같이 협상장 안팎에서 재생에너지 관련 새로운 선언이 이어졌다.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118개국이 참여한 ‘2030년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선언’이 대표적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선언이 실현되면 2030년 전세계 발전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68%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불과 7년 뒤 전세계의 주력 전원이 석탄과 천연가스(LNG), 원자력에서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공적금융의 재생에너지 투자 선언도 잇따랐다. 이미 지난 2021년 말 영·미·캐나다·EU 등 39개 주요국·다자개발은행이 시작한 ‘청정 에너지전환파트너십’에 산유국인 노르웨이와 오스트레일리아가 새로 가입했다. 가입국의 공적금융은 향후 해외 금융지원 때 청정에너지 지원을 최우선시하며, 1년 내 탄소포집 및 저장(CCS) 기술과 같은 탄소저감 수단이 부재한 신규 화석연료 사업 지원은 끝내야 한다.
미·독과 같은 기존 가입국들은 선언 이후 해외 재생에너지 수출 지원을 급격히 확대해 나갔다. 2022년 미국과 독일은 전년 대비 각각 8배, 3배씩 해외 재생에너지 금융 지원을 늘려 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전환 지원에 나섰다. 특히 독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대란 와중에도 국내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과 함께 해외 재생에너지 사업에도 눈을 돌렸다. 지원 대상국의 화석연료 의존 탈피와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주면서 자국 재생에너지 기업들의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신규 가입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비전도 명료하다. 그간 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아시아지역에 수출하는 게 주력 에너지 사업이었다면, 앞으로 급증하는 아시아의 재생에너지·배터리 수요에 맞춰 핵심 광물 수출과 산업 진출 확대를 위해 해외 금융지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산업 기반 마련을 위한 내수 확보는 이미 지난해 시작됐다. 석탄·가스 중심 전력망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중심(82%)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처음으로 총회 기간 중 기후행동네트워크가 주는 ‘오늘의 화석상’을 받았다. 해외 화석연료 금융 규모는 전세계 2위인 반면, 재생에너지 금융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홍보관에서 에스케이 이앤에스(SKE&S)의 신규 가스전 사업(호주 바로사 가스전)을 ‘탄소중립 LNG’, ‘저탄소 수소’로 홍보한 것도 이유로 꼽혔다. CCS같은 저감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배출 저감량은 일부이며, 결국 신규 사업은 향후 수 십년 간 ‘탄소 폭탄’을 대기 중에 추가한다는 이유에서다.
서두에 언급한 타이밍의 중요성은 서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새로운 파도를 잡으려 분투하는데 머뭇거리거나 어제 탔던 파도 생각만 하고 있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가 중심이 됐던 거대한 파도는 빠른 속도로 저물어간다. 탄소 최대 배출원인 석탄뿐 아니라, 브릿지 연료로 생각됐던 천연가스의 쇠락도 빨라졌다. 지나간 화석연료의 파도는 포장지를 수소나 CCS로 바꾼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를 지키려 우린 내일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턱밑까지 차오른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의 파도는 내년에도 더욱 높게 몰아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