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게 먼저여야 했다. 한 위원장은 ‘동료’를 원하나, ‘신민’을 원하나.
그들만의 언어인 ‘서초동 사투리’를 ‘여의도’에 주입하려 들지 말라.
권태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00명이 쓰는 ‘여의도 사투리’ 쓰지 않고, 5천만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다. 이전부터 국회 주변에서 일컫던 ‘여의도 문법’이란, 완곡하게 표현해 상대방에게 역공 빌미를 주지 않거나, 모호한 화법으로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게끔 여지를 열어두거나,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른 말을 너도나도 뻔히 알면서 아무렇지 않게 서로 주고받는, 그런 말투를 뜻한다. 좋게 표현하면, ‘외교적 수사’라 하겠다. 이를 잘 못하는 게 윤석열 대통령이다. 거침없는 직설적 표현으로 불필요한 외교적 손실을 입거나, 국내 정치적으로도 화를 자초한 적이 많다. 검찰 시절 몸에 밴 거친 말투를 대통령 된 지금도 그대로 쓰는 탓이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 비하면 외모도 화법도 상대적으로 세련됐다. 그러나 본질은 똑같다.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이 잘 보여준다. 보통 당대표 취임 연설과 많이 다르다. 화려한 인용으로 포장했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이 목표다’, ‘국회의원 출마 않겠다’, ‘불체포 특권 포기하라’ 등이다. 셋 다 이상하다.
여당 대표가 총선 앞두고 국민들께 약속할 게 ‘운동권 특권정치 타파’뿐인가. 이야말로 ‘여의도 패싸움’ 아닌가. 지금 서민들이 고통받고 힘겨운 게 ‘운동권 특권정치’ 때문인가. ‘운동권 특권정치’로 고통받는 세력은 ‘비운동권 특권정치’ 세력일 것이다. 여당 대표라면, 지난 1년8개월 국정을 설명해야 한다. 사죄든 성찰이든 자랑이든. 여당이기에 “대통령 일”과 “우리(국민의힘) 일”로 그리 맘 편히 나눌 수 없다. 또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비대위원장 보름, 아직까진 아무것도 없다.
출마 않겠다며 대단한 ‘희생’인 양했다. 선거 상황을 모르진 않을 테니, 비겁하거나 사람들을 바보로 알거나, 둘 중 하나다. 현재로선 국민의힘 후보로 당선을 자신할 곳은 한 위원장이 자란 ‘강남 8학군’과 영남 외엔 없다. 비례도 쉽지 않다. 선거법에 따라, 위성정당 후보로 나갈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판국에 출마 않는 게 무슨 “용기”인가. “과실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라니, 험지 출마하는 동료들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머릿속에 늘 ‘강남 출마’를 염두에 뒀던 게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 비대위원장으로 전체 선거판을 지휘해야 하니 지역구 몸 묶이는 것보다 자유로이 전국 도는 게 효과적인 선거 전략일 수 있다. 그렇다면 힘든 싸움 벌여야 하는 ‘동료 출마자들’에게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불출마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게 먼저여야 했다.
‘불체포 특권 포기’를 불쑥 선언하고, 이를 약속해야 공천 준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격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는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원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다. 불체포 특권은 행정부의 권한을 제어하는 측면도 있다. 특권 논란은 ‘방탄 회기 방지’ 등 국회법 개정으로 보완할 수도 있다. 이는 함께 논의할 사안이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윽박지를 일이 아니다. 당내 선거도 없이, 의원도, 당 생활 한 적도 없는 ‘낙하산 중의 낙하산’ 비대위원장이 ‘공천’, ‘출당’ 거론하며 협박하듯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과거 특수부에서 피의자 다루던 ‘쿠세’가 여태껏 남았기 때문인가. 한 위원장이 해외 연설문에서 따온 ‘동료 시민’(fellow citizen)은 국가의 일원인 국민과 달리, 사회 구성원으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니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의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한 위원장은 ‘동료’를 원하나, ‘신민’을 원하나.
비대위원 인선도 ‘보안’, ‘독단’ 발표했다. 고독한 결정을 내린 셈인데, 나이만 낮췄을 뿐 ‘반이재명’ 일색에 막말 전력자들이 많다. 벌써 한명 낙마했고, 또 다른 한명도 비상식적 막말 전력이 계속 나온다. 법무부 장관 때도 ‘검증 무능’이더니 비대위원장 돼서도 똑같다. 또 비서실장은 변호사 출신, 사무총장은 판사 출신, 공천관리위원장도 판사 출신, ‘1호 영입 인재’는 한동훈 팬클럽 회원인 서울법대 후배 변호사. 2주간 인사 내용이다.
‘여의도 사투리’는 위선의 언어지만, 그렇기에 더욱 주변 눈치를 많이 본다. 무엇보다 되는 일 잘 없지만, 그래도 협의한다. 300명뿐이지만, 그래도 온 국민이 뽑아준 사람들이다. ‘서초동 사투리’는 폭력적이다. 위선이 아닌 것도 아니다. ‘동료 시민’ 눈치는 안 보고, 윗사람 눈치만 본다. 명령에 익숙하다. 전국의 특수부 검사는 100명이 채 안 된다. 국민 아닌 검찰총장이 뽑는다. 그들만의 언어인 ‘서초동 사투리’를 ‘여의도’에 주입하려 들지 말라. 이미 예전과 달리 ‘여의도 사투리’도 폭력적으로 변했다. ‘서초동 사투리’까지 더하지 말라. 한 위원장은 온 국민이 쓰는 표준말을 쓰기 바란다.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