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본회의장 계단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늘 준비된 모습이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그에 맞춰 연기하는 배우 같다. 19일 국회 중앙홀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모습도 그랬다. 어차피 예상 질문은 뻔하다. ‘비대위원장?’, ‘윤석열 아바타, 경험 부족?’, ‘김건희?’ 등이다. 일정 취소하며 준비한 답변을 마치 즉문즉답처럼 연출했다. “김건희 특검은 악법, 명품 백은 공작”, “공공선, 맹종”, 양념처럼 루쉰의 소설 한 문장까지. 영화 ‘불량남녀’의 임창정이 떠오른다.
지난달 17일 대구 방문 ‘썰렁 유머’, 4일 뒤 대전 방문 “여의도 사투리” 등도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공격적 질문을 받으면, 답변 대신 “의원님께서 그런 질문 하는 건 매우 이상합니다”라며 질문 의원의 과거 잘못을 수치까지 들이대 역공한다. ‘해당 의원 구체 행적’을 미리 숙지한 것으로밖엔 안 보인다. 준비성 좋다는 건 도어스테핑 중단이 보여주듯 얼렁뚱땅 윤석열 대통령 스타일과 비교하면, 긍정적 요소이긴 하다. 술을 안 마시는 것도 큰 차별성이긴 하다.
한 장관은 또 민주당 퇴치가 일생의 과업인 것처럼 행동한다. 문재인 정부 좌천의 한이 여태껏 서려 있다. 공개적으로 제1야당을 향해 “멍청이”라 하는 등 모든 말에 민주당 혐오와 적의가 배어 있다. 이런 장관은 없었다. ‘김 여사 명품 백’ 물음에 “민주당이 저한테 물어보라고 (기자들에게) 시키고 다닌다”는 말부터 했다. 기자들이 꼭두각시인가. 기자로서 모욕감을 느꼈다. 사실도 아닌 풍문 전언을 공식 석상에서 장관이 함부로 얘기하는 건 자질 문제다. “이걸 물어보면 왜 제가 곤란할 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형적인 자기중심주의적 사고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하루아침에 뜬 ‘아이돌 센터’들이 종종 빠지는 병이다. 지난 6일 같은 질문에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 “가정을 갖고 물어보면…”이라며 회피하다가, 이제 비대위원장 결심을 하자 ‘몰카 공작’이라며 정면 돌파를 택한 것 아닌가. 그러고서 누굴 탓하나.
이어 열린 법사위에선 김영배 민주당 의원의 거취 질문(“(국민들이) 궁금해한다”)에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것 같다”며 조롱했다.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대표’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에게 답하는 모양새가 아니다.
한 장관은 똑똑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누린다. ‘원희룡’ 상위호환 모델이다. 요즘 그 또래에 그 정도 스타일리시는 널리고 널렸으나, 윤 대통령 등 현재 60~70대 국민의힘 리더들에겐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기에 효과가 배가된 것이다.
그런데 1년 반가량 장관으로 무얼 했는지, 무슨 능력을 보여줬는지 알 수가 없다. 온갖 큰소리치던 인사검증은 참혹하다. 두가지로 답한다. “몰랐다”, “(알았지만) 판단은 대통령실”. 무능 아니면 무책임. 지난 6월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송사에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690억원 배상 판정을 받았다. 배상금 총액은 1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때 법무부 입장자료는 “엘리엇 청구 배상금액 중 7%만 인용돼, 93% 승소했다”였다. 기상천외하다. 이런 계산 하는 게 유능인가. 8월엔 시민단체가 제기한 2022년 미국 출장비 내역 ‘정보공개 청구’ 요청 소송에서 패소했다. 앞서 야당의 출장비 공개 요구에 “공개하겠다. 대신 전 정부 출장비 내역도 공개해 누가 제대로 썼는지 비교하자”고 했다. 애들 떼쓰는 것 같다. 그러고도 공개 않다가, 소송까지 걸렸다. 지난 19일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낸 징계처분 취소소송 2심에서 패소했다. 1심 승소 민간 대리인들을 정부법무공단으로 돌연 교체하고, 법정에선 윤 대통령 쪽 대리인들이 70분 증인신문 할 때, 법무부는 7분 했다. 어쨌든 또 패소다. 정부 소송 패소 전문 장관이다. 지난해 9월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구속과 관련해 국회에서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하더니, 영장이 기각되자 “(영장 기각이) 죄가 없다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게 유능인가.
한 장관은 “공공선”을 추구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재벌, 이명박·박근혜, 현재 이재명에 이르기까지 사회 ‘거악’을 무찌르는 전사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부심일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공공선’일까. 윤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직후,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 했다. 그 결과가 ‘한동훈 비대위’인가. 한동훈 비대위는 누가 원하나. 국민인가, 윤 대통령인가.
한 장관은 정치 경험이 없다. 그래서 전장을 ‘비정치’로 옮기려 할 것이다. 서울·경기경찰청장 출신이 원내대표, 사무총장, 인재영입위원장, 최고위원에 포진돼 있으니 비대위원장은 검찰 수사지휘 하듯 하면 되는가. 정치 혐오 극대화, ‘말폭탄’으로 야당 자극, 지지층 환호. 이게 ‘공공’의 선일까.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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