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경제 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올해 상반기 우리 사회 최대 현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었습니다. <한겨레>도 독자 여러분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제대로 알리고자 애를 썼습니다. 올 들어 지난달 30일 협정문 서명까지 한겨레는 모두 861건의 관련 기사·사설·칼럼을 실었습니다. 861건 가운데 1면에 실린 기사가 61건, 이 중에서도 머릿기사가 26건이었습니다. 1주일에 한 차례 이상 가장 중요한 뉴스로 다룬 셈입니다. 다른 신문사들의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ㅈ일보가 711건, 또다른 ㅈ일보는 482건이더군요.
분량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저희는 다른 신문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습니다. 한 신문은 이 협정을 ‘제3의 개국’이라고 치켜세웠고, 또다른 신문은 한-미 안보동맹 위에 경제동맹이 겹쳐지게 돼 한국 경제가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한겨레의 보도는 비판적이었습니다. 저희도 개방의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협상 과정을 취재하면 할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우리 정부는 4대 선결조건 수용부터 재협상까지 미국의 요구에 끌려다녔습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이익은 추상적인 데 반해 예상되는 손실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 뻔한데도 이를 보완할 대책은 부실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 무역구제, 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핵심 쟁점과 관련해 정부가 감추려고 했던 사실들을 찾아내 특종으로 보도했습니다. 정부의 반응도 날카로워졌습니다. 청와대는 4월 중순 <청와대 브리핑>에 ‘한겨레에 보내는 쓴소리’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한겨레의 보도를 비판했습니다. 외교통상부는 한겨레가 대외비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것을 두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저희의 보도 가운데 일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전체를 그리려다 세부 내용을 소홀히하거나 협상의 이면을 파헤치다 큰 흐름을 놓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점 겸허히 반성합니다.
협정문 서명 이후 대부분의 언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문제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 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협정문에 추가됐다는 사실, 정부가 재협상에서 얻어냈다던 노동·환경 관련 분쟁의 안전장치가 미국 쪽의 협정문엔 들어있지 않아 효력이 의문시된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습니다.
협정의 성격상 체결까지는 행정부의 재량과 의지가 그대로 관철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아 있는 국회의 비준 동의는 사정이 다릅니다. 정부는 올 가을 정기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내겠다고 하지만, 다음 정부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지난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만큼 비준 동의를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최대 쟁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겨레는 대선과 총선에서 각 후보와 정당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엄정히 취재·보도하려고 합니다. 정부를 선택하고 국민의 대표를 뽑는 데 이것만큼 중요한 기준이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보도의 전반전을 반성적으로 뒤돌아보고, 후반전을 준비하면서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있습니다. 안재승 경제부문 편집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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