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 사회부문 교육팀장
편집국에서
우리나라 학부모의 교육열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뜨겁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치른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을 보면, 과연 이 나라가 세계 최고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인지 의문스럽게 합니다. 15.5%라는 낮은 투표율 덕에, 공정택 후보는 전체 유권자 808만4574명 중 6.2%인 49만9254명의 지지만 받고도 당선됐습니다. 대표성에 큰 흠집이 생긴 것이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6.2%’의 내용입니다. 공 당선자는 25개 구 가운데 강남학군(옛 8학군)인 강남·서초구 두 곳에서만 자신이 얻은 전체 득표의 17.8%(8만9024표)를 쓸어담았습니다. 강남·서초구 유권자들이 각각 61.1%, 59%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표를 몰아준 덕분입니다. 1·2위 표차가 2만2053표에 불과한데, 강남구에서만 공 당선자가 3만2776표를 앞섰습니다. 공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은 ‘강남 아줌마’라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
강남 유권자들은 왜 그에게 몰표를 줬을까요? 공 당선자의 정책 방향이 이 지역 유권자들의 계층적 이해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턴가 빈부에 따른 주거지 분리 현상이 뚜렷해졌습니다. 서울 강남구가 대표적입니다. 최은영씨는 2004년에 쓴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서울의 거주지 분리 심화와 교육환경의 차별화>에서 집값과 부모와 자녀의 학력 등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강남지역을 ‘빗장도시’로 규정했습니다. 견고한 사회·경제적 장벽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세대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룬 강남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입니다. 그 통로가 바로 교육입니다. 이에 따라 강남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차별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엄청난 사교육비와 조기 유학, 높은 특목고·자사고 선호 등은 이런 욕구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들은 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우수하다는 걸 사회적으로 ‘공인’받고 싶어합니다. 이런 점에서 강남 학부모들이 특목고·자사고 확대, 일제고사를 통한 학교별 성적 공개 등을 공약으로 내건 공 당선자에게 몰표를 던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공 당선자의 선거운동 방식입니다. 공 당선자는 선거기간 내내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시민단체 등이 연 토론회에는 죄다 불참해 정책 검증을 철저하게 외면했습니다. 대신, 주경복 후보를 ‘전교조 후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선거 막판엔 펼침막을 통해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주경복 후보=전교조, 전교조=교육을 무너뜨리는 세력, 주경복 후보=교육을 무너뜨릴 후보’라는 인상을 심으려는 전형적인 네거티브 선거 전략입니다. 이런 주장은 9만여명에 이르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예를 근거도 없이 훼손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선거는 선거입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표 차이가 얼마가 났든, 이긴 사람이 권한을 행사합니다. 다만, 공 당선자가 ‘강남 교육감’이라는 오명을 벗고 반대 세력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선거 뒤 공 당선자가 한 말을 보면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것이 사실입니다.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에게서 경쟁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과연 ‘경쟁교육의 전도사’답습니다. 독재보다 더 나쁜 게 독식이라는데, 이제 우리 교육이 독식시대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이종규 사회부문 교육팀장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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