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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프로야구를 짓밟는 사람들 / 백기철

등록 2008-12-28 21:34

백기철 스포츠부문 편집장
백기철 스포츠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지난주 프로야구계는 우울한 한 주였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자율 총재’로 옹립됐던 유영구씨가 갑작스레 사퇴했습니다. 정부 압력 때문이란 후문이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쾌거,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의 500만 관중몰이로 한껏 부풀었던 프로야구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습니다.

‘낙하산 총재’를 투입하려는 정부 압력의 실체는 여러 곳에서 확인됐습니다. “야구위원회가 사전교감을 안 해 불쾌하다”던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의 발언은 오만하기까지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밀약설은 점입가경입니다. 여권 고위 인사는 지난주 기자들과 만나 “와이에스가 이 대통령에게 아들 김현철씨와 박종웅 전 의원 등 두 명을 부탁했다. 와이에스 부탁인데 매몰차게 거절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권 수뇌부가 박 전 의원을 야구위원회 총재로 일찌감치 낙점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상당수 프로야구 팬들은 비분강개했습니다. “낙하산 총재가 오면 야구장에 발길을 끊겠다” “야구팬들이 일어나 낙하산을 찢어버리자”는 등의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여차하면 프로야구 팬들이 ‘촛불’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형국입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야구위원회 누리집 게시판에는 여야 현역 의원들의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자율 총재를 사퇴시킨) 문화부 조처는 시대착오적인 월권이고, 이명박 정부의 개혁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이야기를 해놓았더군요. 그는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체육특위 위원장으로 있었는데 야구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신상우씨가 총재로 거론될 때 청와대를 포함한 곳곳에 항변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면 낙하산 파동의 등장인물은 다소 복잡해집니다. 와이에스와 엠비, 문화부 당국자, 박 전 의원, 그리고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신상우 전 총재까지 이어집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프로야구를 우습게 봤다는 점입니다. 민간 영역의 야구위원회 총재 자리를 제멋대로 주고받는 전리품 정도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낙하산 세력’은 프로야구계 내부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의 여권 고위 인사는 “얼마 전 야구위원회 고위 인사가 전화를 해서 ‘총재로 와 달라’고 하더라. 그쪽에서는 정치권 인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이 왔으면 하는 눈치였다”고 했습니다. 이 인사는 자기가 총재를 맡으면 “욕먹겠다 싶어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낙하산을 데리고 와서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려는 ‘내부의 적’이 프로야구계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정치권과 야구위원회는 모처럼 되살아난 프로야구 열기를 짓밟는 일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밀실에서 무슨 전리품 나누듯 총재 자리를 흥정하는 관행이 더이상 되풀이돼선 안 됩니다.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힐수록 ‘정도’로 가야 합니다. 우선, 이 대통령은 야구위원회 총재의 공정한 선임을 보장해야 합니다. 낙하산 관행의 근본적 책임은 힘을 가진 정치권에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스포츠마저 점령군처럼 짓밟는 퇴행적 행태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박종웅 전 의원은 미련을 버리는 게 정도입니다. ‘야구의 도시’ 부산의 명예를 생각하십시오. 정치권 줄대기에 급급해온 야구위원회 일부 인사들에게도 맹성을 촉구합니다. 공정하고 명예로운 총재 선임이야말로 내년 프로야구가 팬들로부터 더욱 사랑받는 지름길입니다.

백기철 스포츠부문 편집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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