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던 것 같다. 아침 잠결에 꿈을 꾸었다. 내가 저 낭떠러지 밑, 부엉이 바위 밑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 찰나였다. 비록 꿈이었지만 너무 끔찍했다. 저 밑에 쭈뼛쭈뼛 솟아 있는 바위며, 무섭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대지를 보며 몸서리를 쳤다. 나는 그때 노 전 대통령의 투신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막다른 골목이었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며 ‘광주’를 떠올렸다. ‘광주’ 이후 누군가의 죽음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영혼을 울린 적이 있을까? 80년대 광주가 마치 벼락처럼 우리에게 왔듯,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이 대명천지 ‘민주주의 세상’을 대지진처럼 흔들어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광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면, 이제 한국 정치는 노무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책임자는 신군부와 미국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말 그대로 민주주의를 요구했을 뿐이다. 광주 시민들은 총칼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항거했다. 유혈 진압 이후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자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권력은 선거를 통해 나와야 한다는 것, 집회·시위·언론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 기본 장치들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 미국이 더 이상 한국 정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전진과 퇴보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역사는 광주 시민들의 ‘핏값’을 그렇게 받아오고 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이들은 누구인가? 정종연 시인이 적은 대로 ‘포괄적 살인자’들은 누구인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답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촛불에 데인 뒤, 과거 권력의 숨통마저 끊겠다며 정치보복을 배후 조종한 정권, 권력의 개처럼 미친 듯이 날뛴, 합리적이지도 우직하지도 못한 바보 같은 정치 검찰, 600만달러를 둘러싼 몇 개의 ‘관건적 팩트’로 전직 대통령의 살아온 인생 자체를, 정치생명을 아예 끝장내겠다고 달려든 ‘하이에나’ 언론. 이들이 ‘포괄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그 끔찍한 낭떠러지로 밀어붙인 것이 아닌가.
노무현의 비극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그의 투신은 그를 죽음으로 내몬 한국 정치의 수준, 천박한 민주주의 실상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광주 시민이 죽음으로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외쳤듯, 노 전 대통령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여정에 한목숨 기꺼이 바친 것이리라. 그 길은 바로 검찰·경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시대착오적 정치의 청산, 정치 검찰의 숙정, 언론 개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가 생전에 염원한 국민이 대통령인 시대, 서민이 주인인 시대로 나아가는 길이다.
추모를 위해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을 보내드리기 힘든 이들은 아직도 서울광장과 봉하마을을 찾는다. 일상에선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하고, 아이들과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를 당장 심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역사의 심판’이 꼭 멀리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역사는 언제나 불현듯 다가와 순결한 이들의 ‘핏값’을 받아낸다.
그때까지, 노무현이 지펴놓은 불꽃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거리에서건, 일상에서건 미안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으면서 오롯이 그 ‘촛불’을 간직할 일이다.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이 이뤄지기까지, 권력을 사유화하는 천박한 정치가 끝장날 때까지, 서민이 주인되는 세상이 오기까지 이 ‘촛불’을 내릴 수 없다.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kcbaek@hani.co.kr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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