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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방송법 개정의 조건 / 김이택

등록 2009-07-15 22:12

김이택  수석부국장
김이택 수석부국장
“내가 반말을 좀 쓴 거 같은데, 그거 대단히 미안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주의를 해서 대화를 하겠습니다.”

칠순을 넘긴 노정객이 아들뻘인 ‘유력 언론’ 사주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 자리에서 무심코 젊은 사주에게 반말을 했는데, 그 뒤부터 자신을 겨냥한 비판기사가 터져나오자, 당 간부들이 수습에 나섰고 결국 총재인 그가 직접 찾아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 부친이나 삼촌은 내가 6·25 전부터 아는 사이인데 … 나한테는 대단히 치욕적인 일이었지만, 당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또다른 언론 사주는 현직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몇 가지 회사 ‘민원’ 해결을 부탁했다. 대통령은 핵심 측근을 불러 해결해보라고 했다. 측근은 대법원에 걸려 있던 사건을 풀어보려 사주와 담당 대법관의 만남까지 주선했다. 하지만 사주가 초면의 대법관에게 시종일관 ‘아무개군’이라며 반말을 해대는 바람에 산통이 깨졌다. 다른 민원들도 무리한 요구 탓에 제대로 풀릴 수가 없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전까지 정권에 호의적이던 이 언론의 보도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불과 10여년 전 일들이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에게 무릎 꿇고 술잔을 따르던 언론사주들은 시민의 힘으로 언론 자유를 되찾게 되자 정치권력을 길들이려 했다. 김대중 정부 후반 ‘냉전’을 겪은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은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열전’을 치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의 ‘밀월기’라 할 만하다. 정권이 휘청거릴 때마다 ‘왜곡’과 ‘과장’도 불사하며 지킴이로 나섰다.

쇠고기 협상을 잘못한 것은 정부지만, ‘피디수첩’을 집중 난타해 주무 장관을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만들어줬다. 촛불시위대를 때려잡는 경찰과 검찰은 ‘법치주의’로 포장해주고, 바른말 하는 판사들은 ‘좌파’라고 딱지 붙였다. 용산참사는 도심 ‘테러집단’의 난동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 표적수사는 정당한 ‘비리 수사’라고 했다. 부자 감세, 서민 홀대하는 대통령을 떡볶이 아줌마와 노점상 할머니 편으로, 장애인 앞에서 눈물 흘리고 농민들과 막걸리 마시는 서민대통령으로 그려주었다.

엠비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장자연 사건에서 경찰은 ‘유력 언론’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 사주 아들은 추가 소환도 하지 않았고, 유력 언론 스스로 접대 의혹을 내비쳤던 계열사 전 대표까지 눈 딱 감고 무혐의 처리해줬다. 동아일보 사주 주식 비리 사건 수사도 지켜볼 일이다.


결정판은 역시 ‘방송법’이다. 한나라당은 종합편성채널이든 보도전문채널이든 안겨줄 태세다. 하지만 10년을 굶주린 탓인가, 너무 서두른다. 털도 안 뽑고 통째로 먹이려 든다. 국민이 반대한다며 대운하까지 포기를 선언한 그들이 국민 63.5%가 반대하는 이 법은 이번 회기에 무조건 통과시킨다며 막무가내다.

후유증이 걱정이다. 특히 선거 보도가 문제다. 방송까지 거머쥔 권언복합체가 과연 중립을 지킬 수 있을까. 이미 편파보도의 ‘전과’가 적잖다. 97년 대선 땐 ‘이회창 후보 경선 전략’ 문건까지 만들어 선거운동에 나섰는데, 2002년 대선 당일의 ‘정몽준은 노무현을 버렸다’ 사설을 방송에까지 틀어댄다고 생각해보라. “민주주의가 20~30년 후퇴하고, 일본처럼 정권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아사노 겐이치 교수의 말(<한겨레> 7월13일치 4면)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방송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는 나경원 의원의 말을 믿게 하려면, 이런 의구심들을 풀어줄 최소한의 ‘절차’와 ‘장치’가 필요하다. 13년 전, 노동법 날치기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영삼 정권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이택 수석부국장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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