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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호소카와와 하토야마 / 백기철

등록 2009-09-02 21:06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
일본의 8·30 총선을 지켜보며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란 말을 새삼 실감했다. 갑자기 확 바뀌어버린 일본 정치가 낯설게 다가왔다. 미국만 해도 정치판의 시시콜콜한 동향까지 신속하게 접하지만, 일본 정치는 그동안 저만큼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이 우리에게 갖는 압도적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 정치가 그만큼 무미건조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변화의 진원지로 새롭게 떠오른 일본을 보며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떠올렸다. “사라질 때를 알아야 꽃도 꽃이 되고, 사람도 사람이 된다.” 그는 평소 정치철학대로 국민이 열광할 때 8개월여 만에 총리직을 홀연히 떠났다. 일본 정치인 중 거의 유일하게 호감이 가는 정치인이었던 것 같다. 일본신당의 호소카와는 1955년 이후 지속돼온 자민당 장기집권체제, 즉 ‘55년 체제’를 뒤엎고 1993년 7월 최초로 성립한 비자민 연립정권의 총리였다. 단명한 호소카와 이후 15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그 과업을 완성했다. 물론 호소카와 때나 하토야마 때나 그 배후에 일본 정치의 ‘파괴자’이자 ‘건설자’인 오자와 이치로가 있었다.

호소카와가 씨앗을 뿌리고, 하토야마가 결실을 거둔 ‘신일본’의 조건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이번 총선은 선진국 일본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처음으로 실현함으로써 ‘담합정치’ 방식의 기형적인 구체제를 청산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의 요체는 첫째, 정권교체가 가능한 새로운 정치체제의 정착, 둘째, 양극화가 불러온 이른바 ‘격차사회’의 해소, 셋째, 뿌리 깊은 관료제 폐해의 극복, 넷째,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의 전환 등으로 요약된다. 하토야마 대표가 선거 때 내건 ‘생활정치’나 ‘우애정치’라는 말에는 이런 과제들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총선으로 인한 변화는 일단 일본 사회 내부에서 거세게 불 것 같다. 민주당이 당장 외치에서 큰 변화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하토야마 대표가 대미 대등외교를 표방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노무현식’ 대미정책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양국 관계의 근본 틀은 유지한 채 부분적인 보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북정책에서도 국내 여론상 일본이 당장 이니셔티브를 쥐고 뭔가를 도모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동북아에서 한-미-일 보수동맹의 가장 강고한 축이었던 자민당 정권이 무너짐으로써, 동북아가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으로 진입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일본 열도의 변화 바람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신자유주의가 언젠간 파탄날 수 있는 극히 불안정한 정책노선이라는 점이다. 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신자유주의가 퇴조하면서 전지구적 한계가 더욱 명확해졌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최근 표방하고 있는 중도실용 노선의 폭과 깊이에 대해 더욱더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둘째, 동북아가 변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올해 들어 우리 맹방인 미국과 일본에서 모두 정권이 바뀌었다. 냉탕, 온탕을 오가는 북한이지만 그들도 일단 현재의 동북아 정세를 기회로 보고 움직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변화 흐름에 맞추어 좀더 유연하고 능동적인 외교안보정책을 고민할 때이다.

셋째, 정치가 민심을 외면한 채 고여 있으면 언젠가 준열한 심판을 받는다는 점이다. 자민당의 몰락은 이를 웅변한다. 우리 정치도 어찌 보면 패러다임의 위기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여야 모두 국민의 정서와 생활감각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국민과 더불어 호흡하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모색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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