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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 이 땅의 ‘보수’에게 묻는다 / 김이택

등록 2010-12-08 20:38수정 2010-12-09 08:16

김이택  수석부국장
김이택 수석부국장
리영희 선생이 어제 먼 길을 떠나셨다. 시대의 모순을 꿰뚫는 선지자로서 그는 남북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탁견을 내놓았다. 남북한이 재격돌 일보 직전에 있는 요즘 그의 한반도 평화 구상이 새삼스럽다. 선생은 1992년에 이미 남북한의 비핵화, 통일한국의 비핵화·중립화를 토대로 한 동북아 6개국의 공동체적 평화체제 구축을 주창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절반씩 가미한 체제수렴적 통일을 지향하자는 구상도 내놓은 바 있다.

그의 한반도 평화 구상은 사실상 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에서 합의한 통일방안과도 일맥상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실정치인으로서 실용적·대중적인 용어로 통일방안을 제시했다면, 리 선생은 지식인으로서 좀더 근본적이고 직설적인 접근을 한 셈이다.

국지적 충돌은 있었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두 차례 정상회담 합의를 통해, 남북간의 평화정착 방안은 실행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핵문제도 6자회담이란 틀을 통해 해결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연평도 사건으로 상징되듯이, 현 정부 들어 한반도 상황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보수’ 논객들은 사건 직후 “서해5도를 요새화해 전력을 강화하고” “교전규칙을 수정하자”거나 “F15기를 동원한 폭격으로 2~3배로 보복하자”는 등의 주장을 해법이라고 쏟아냈다. 모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수준의 대안들이다. 그나마 중국에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촉구한 정도가 사태의 본질에 근접한 처방이었으나, 현재의 한반도 주변 구도 속에서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근본적 해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최근 보수의 대부로 나름 합리적이라는 박세일 교수가 보수 동네 통일정책의 일단을 드러냈다. 언론 기고를 통해 “북의 도발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며 “응징을 결정할 때 확전과 전면전의 가능성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원과 견제라는 두가지 수단을 조합해 북한을 변화의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창조적 세계화론>)던 입장에서도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사실상 ‘무력통일 불사론’을 공언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3000’ 대선 공약이 왜 반쪽짜리였는지 요즘 들어 의문이 풀리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소득 3000달러 수준이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공약은 그렇게 유도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지 않으면 힘으로 무너뜨리겠다는 또다른 반쪽이 있었으니 굳이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 교수의 기고가 보수판 통일론의 실체를 잘 보여준 셈이다.

이런 보수의 생각은 뿌리가 깊다. 굳이 이승만 시절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1994년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보수의 불장난이 실제상황임을 잘 보여준다. 당시 보수 강경파는 북-미 간에 진행되던 북핵 일괄협상안에 대해 “남북간 합의가 먼저”라며 딴죽을 걸었고, 관례를 깨고 북한 협상대표의 ‘불바다’ 발언을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함으로써 협상 분위기를 날려버렸다. 실제 미국이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추진하던 상황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은 “안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수백만명이 희생당할 뻔했다는 전쟁을 막은 것은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과 레이니 주한미대사의 권유를 받은 카터의 방북이었다.

이제 “대북 전투기 폭격”을 되뇌는 정부와 보수 논객들에게 묻는다. 2~3배로 되갚겠다는 북에 전투기로 대응하면서 확전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할 자신은 있는가.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틀어쥔 상황에서, 우리 의도와 달리 94년식 위기가 되풀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있는가. 북한이 저농축우라늄 시설을 공개한 마당에, 남북 분쟁을 장기화함으로써 고농축우라늄으로 핵폭탄을 더 많이 만들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하나 더. “응징도 해야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보수 스스로 “‘햇볕정책=평화’는 허구”라는 주장만이라도 거둬들이라.


김이택 수석부국장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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