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부장
중산층의 이반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여권이 북새통이다. 여당 소장파의 반란, 감세 철회 논란, 청와대의 공정사회론 재가동 등은 모두 ‘집 나간 중산층’을 돌려세우려는 고육책이다. 5년 전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 4년차 이명박 정부도 이제 중산층한테 버림받았다는 악몽 같은 현실과 맞닥뜨리게 됐다.
중산층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4·27 재보궐선거를 치르면서 비교적 명확해졌다. 전셋값 상승, 대출이자 부담, 사교육 광풍, 불안한 고용, 안전판 없는 노후… 웬만한 보통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 고통들이다. 사실 이런 고통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지금’ 그들이 변하고 있는 걸까?
보통사람들의 분노와 피로감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재보선은 그 신호음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상은 강퍅하게 변해버렸다. 경쟁과 효율이 최우선 가치가 되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지만, 안전망은 미미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속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모두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기에 이명박 정부로 바꿔보았지만, 앓느니 죽을 지경이 됐다.
중산층의 이반은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강요된 한국식 신자유주의 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대기업·부자·강자 독식 신자유주의 체제의 정점이 이명박 정부다. 마지막으로 확 몰아줬더니 화끈하게 속았다고 할까. 대기업은 최대 이익을 낸다는데, 내겐 돌아오는 게 없고, 먹고살기는 더 팍팍해졌다.
한국의 시대정신은 지금 ‘좌회전’ 중이다. 시대정신이란 결국 중산층, 중도층, 30·40대가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보통사람들은 지금 좌로, 좌로 이동중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점을 찍은 성장 일변도의 발전방식에 대한 회의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어느덧 70%의 국민이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사회가 됐다. 중산층은 충분히 지쳤고, 늙었다. 글로벌화 덕분에 다른 나라들은 이 정도 경제수준이면 더 ‘편하게’ 산다는 것도 안다.
이명박 정부는 결국 오도 가도 못한 채 중산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높다. 과감하게 좌회전하면 자칫 정권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후반 자유무역협정과 대연정을 시도하다 곤욕을 치른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고소득층 일변도의 기존 정책을 고수할 수도 없다.
여당 대선주자들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가 지지부진한 건 이유가 있다. 자기 팔뚝이라도 넣어 무상급식을 막겠다고 외치는 오 시장이나, 보수의 정체성을 확립하자고 목청을 높이는 김 지사나 중산층이 보기엔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두 사람은 이명박의 변종일 뿐이다.
그렇다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복지론이 시대정신의 단초라도 읽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제대로 공론에 부쳐진 적도 없다. 그저 이 대통령과 ‘무언의 차별화’를 하면서 반사이익만 챙기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중산층의 바다를 헤엄쳐 나가기에는 그가 물려받은 유산의 무게가 버거워 보인다.
보수정권이 10년은 갈 것이라는 전망도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야권에선 이제는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으냐는 말이 나온다. 야권은 이제야 출발선의 균형을 조금 맞췄다. 한참 앞서 달리던 여당 주자들과의 거리를 조금 좁힌 형국이다. 중산층 민심이 변한다고 해서 무책임한 진보, 현실감 없는 좌회전은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생활과 정서에 기반하지 않은 이념적 좌회전은 더욱 위험하다. 북한에 대해 갈수록 싸늘해지는 중산층의 변화를 무시한 대북정책도 자칫 고답적일 수 있다. 절치부심하며 합심해 답안을 찾아낸다면 어느 쪽이든 기회는 있다. 전북 현대라는 프로축구팀은 ‘닥치고 공격’(닥공)으로 유명하다. 감독의 주문이 공격 또 공격인 탓에 붙여진 별명이다. 지금 시대정신의 주문은 ‘닥치고 좌회전!’ 아닐까. 백기철 정치부장kcbaek@hani.co.kr
보수정권이 10년은 갈 것이라는 전망도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야권에선 이제는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으냐는 말이 나온다. 야권은 이제야 출발선의 균형을 조금 맞췄다. 한참 앞서 달리던 여당 주자들과의 거리를 조금 좁힌 형국이다. 중산층 민심이 변한다고 해서 무책임한 진보, 현실감 없는 좌회전은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생활과 정서에 기반하지 않은 이념적 좌회전은 더욱 위험하다. 북한에 대해 갈수록 싸늘해지는 중산층의 변화를 무시한 대북정책도 자칫 고답적일 수 있다. 절치부심하며 합심해 답안을 찾아낸다면 어느 쪽이든 기회는 있다. 전북 현대라는 프로축구팀은 ‘닥치고 공격’(닥공)으로 유명하다. 감독의 주문이 공격 또 공격인 탓에 붙여진 별명이다. 지금 시대정신의 주문은 ‘닥치고 좌회전!’ 아닐까. 백기철 정치부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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