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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마리화나 딜레마

등록 2011-06-08 17:54수정 2011-06-08 19:06

김영희 국제부장
김영희 국제부장
“마리화나를 비범죄화하라”

지난주 글로벌 마약정책위원회는

이런 도발적인 권고를 했다

기회도, 흥미도, 용기도 없어 마약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이지만 최근 멕시코 몬테레이에 있는 한 유치원의 동영상(<한겨레> 1일치 15면)을 보면서는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마약과의 전쟁이 계속되는 몬테레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던 그날, 겁에 질린 4~5살 어린이들은 얼굴을 바닥에 대고 선생님의 노래를 들었다. “만약에 빗방울이 초콜릿이라면, 입을 벌리고 받아먹을 텐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에게 학살의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으려 수용소에서 그림자극을 하던 유대인 귀도의 모습이 겹쳐져 더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2006년 정부가 마약카르텔의 박멸에 나선 이래 4만명이 숨진 멕시코에서, 이젠 가장 부유하고 안전한 도시로 손꼽히던 몬테레이마저도 매일이 전쟁터다. 누구를 위한 마약전쟁인가?

“마리화나를 비범죄화하라.”

지난주 글로벌 마약정책위원회는 이런 도발적인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조지 슐츠, 폴 볼커 등 미국의 전직 관료들,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요사와 카를로스 푸엔테스, 다국적기업 버진의 대표 리처드 브랜슨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멕시코·브라질·콜롬비아의 전직 대통령 등 전세계 저명인사 19명이 이름을 걸었다.


올해는 유엔의 마약에 관한 단일협약이 출범한 지 50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이란 말을 사용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개인과 사회를 엄청나게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했다”고 선언한 위원회의 보고서는 “지난 반세기 유엔, 특히 미국은 모든 나라가 자신과 똑같이 엄격한 마약 정책을 실시할 것을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를 ‘마약 통제 제국주의’라고 부른다.

사실 마약이 20세기 미국에서 ‘범죄의 대상’이 되어가던 과정은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미국의 1937년 마리화나세금법은 그 당시 제지산업의 대체재나 화학섬유의 라이벌로 떠오르던 대마산업을 막기 위한 허스트나 듀퐁 그룹의 압력 탓이란 주장이 만만찮다. 1971년 마약과의 전쟁이란 말을 만들어낸 것도, 1982년 군과 중앙정보국(CIA)을 투입해 마약 퇴치작전을 실제 전쟁화한 것도, 1986년 흑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약 종류에 무려 100 대 1이라는 처벌 가중조항을 도입해 인종차별 논란을 부른 것도 바로 미국이었다.

위원회는 유엔 마약협약이 내걸었던 애초의 목적, ‘인류의 건강과 복지 증진’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단속과 체포, 처벌과 감금이 중심인 마약정책은 인권을 유린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강력한 마약정책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아편, 코카인, 마리화나 등의 소비량은 10~35% 가까이 늘었다. 마약 소지나 거래, 복용자가 아닌 이들의 삶의 파괴도 심각하다. 마약전쟁 속에 23만명의 주민이 떠나버린 멕시코의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10대들은 납치와 협박 등 손쉽게 돈 버는 일에만 나선다. 거꾸로 1980년대 마약 문제에 시달리던 스위스는 처벌 위주의 정책을 바꾸면서 신규 중독자 수와 관련 범죄를 크게 줄였다.

물론 마약 전체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치료용 마리화나를 허용한 국가들과 미국 내 몇몇 주의 사례나 과학적 연구 성과 등을 무시한 채, 타인에 대해 피해를 주지 않아도 무조건 ‘낙인찍기’를 했던 지난 반세기의 대안을 최소한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몬테레이 유치원의 여선생은 그 와중에 어떻게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었느냐는 힐난성 질문에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인류는 적지 않은 금기를 이성의 힘으로 깨뜨려왔다. 멕시코의 현실은, 지금 그런 이성이 필요함을 호소하고 있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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