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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젊은 총잡이들’ 세계경제 납치사건 / 김영희

등록 2011-08-10 19:03

김영희  국제부장
김영희 국제부장
감세와 지출 삭감이 신앙인 이들은
로널드 레이건이나 조지 부시 시절
공화당원과도 다른 근본주의자다
<뉴욕 타임스>의 모린 다우드는 ‘워싱턴 전기톱 살인사건’, 노엄 촘스키는 <인 디즈 타임스>에서 ‘여름 코믹 오페라’라 이름 붙였다. 세계 경제에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운 미국 부채한도 협상 이야기다.

만성종양이 된 미국 재정적자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 ‘큰 정부’ ‘작은 정부’를 둘러싼 민주당-공화당의 철학 차이까지 이 한여름 호러영화의 배경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직접 주범은 따로 있으니, 미국 공화당의 ‘젊은 총잡이들’(영 건스)이 그들이다.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케빈 매카시, 폴 라이언 등 언론에서 ‘영 건스’라 불리던 공화당 하원의원 3인방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지도자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쥐락펴락하며 입지를 굳혔다. 이들을 받친 건 우익 대중운동 조직인 ‘티파티’에 오버랩되는 초선의원 87명이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대혈투의 기원’이란 기사에서 지적했듯, 이번 협상은 영 건스가 준비해온 복수극이었다. 지난 2008년 이들은 대선 패배 원인이 당선만을 의식한 예산 부풀리기, 지역구 선심용 지출 등 근본적 부패에 있다며 당의 대전환을 주장했다. 티파티가 재정지출 삭감과 감세 깃발을 내걸기 이전부터, 공화당 인재발굴을 담당한 이들은 전국에서 이런 뜻에 동의하는 새 얼굴들을 영 건스로 선발해 지원한다. 그리고 그 상당수가 티파티의 급성장을 배경으로 2010년 11월 워싱턴에 입성했다. 올 1월 캔터는 초선들 87명을 모아놓고 “똘똘 뭉쳐 다가오는 부채한도 협상을 오바마에 대한 지렛대이자 숨은 기회로 활용하자”고 촉구했다.

이번 협상 초기 오바마와 베이너는 골프까지 쳐가며 부자감세 폐지와 복지프로그램 축소를 교환하는 ‘빅딜’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 구상에 증세가 포함됐다고 비토를 놓았고, 베이너가 이후 내놓은 ‘2단계 부채증액안’ 표결도 지출 삭감액이 적다며 무산시켰다. 명색이 하원 다수당 지도자인 베이너는 통과선인 217표를 확보 못해 굳은 얼굴로 이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막판엔 캔터도 베이너의 최종안에 찬성했지만, 끝내 20여명의 초선들은 설득하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합의안 발표 직후 이 초강경파들은 <폭스 뉴스>에 몰려나가 10년간 지출 삭감액이 2조4000억달러뿐이라고 성토해댔다.

<허핑턴 포스트>가 “레이건도 인정 안 했을”이라 표현했듯, 이들은 로널드 레이건이나 조지 부시 시절의 주류 공화당원들과도 또 다른 근본주의자들이다. 감세와 지출 삭감이 신앙인 이들에게 미국의 국제적 책임은커녕 아프간전쟁도 안중에 없다.

개인이든 국가든 바람직한 건 버는 한도 안에서 쓰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기운내 일할 정도는 써야 하듯, 국가도 꼭 쓸 데가 있다면 지출을 줄이는 동시에 세입을 늘릴 수밖에 없다. 9%대 실업률에 25년 새 빈부격차가 2배가 된 미국에서, 부자감세 중단 없는 지출축소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부시의 감세로 7년간 줄어든 세수는 1조8000억달러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2년간 제로금리를 선언할 정도로 심각한 경기침체 속에서 이들은 “감세로 돈이 돌리라”라는 주문만 되뇔 뿐이다.

이들에게 세계 경제는 ‘납치’당했다. 지금 전세계의 모습은 옛 명성과 집안 ‘빽’으로 버티던 전교 1등의 내신등급이 깎이자 학교가 흔들린다며 다시 1등 올려놓기에 전교생이 나선 꼴이다.


비극은 이 호러영화가 시리즈물이라는 점. 당장 민주·공화당 동수로 구성할 12인 슈퍼위원회는 12월까지 1조5000억달러의 지출 삭감안을 만들어야 한다. 강경파들은 ‘증세’에 틈을 보일 의원들은 빼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젊은 총잡이들의 총질이 계속되는 한, 이 공포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리기는 쉽지 않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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