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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명구 칼럼] ‘안녕들 하십니까’에 담긴 감성의 문법

등록 2014-01-05 18:45수정 2014-01-06 16:36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주현우씨가 안녕들 하시냐고 물을 때, 이 질문은 가치와 이념, 정보와 지식 등 사실과 논리, 판단과 평가에 대해 물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도 참 아프고 답답한데, 당신들은 어떠신지요,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대자보가 가치와 이념의 수준에서 사실 판단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사람의 답을 듣고자 했다면 많은 대자보 중 하나로 묻혔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사회에 던진 호소문 하나가 우리들의 어떤 감성을 어떻게 건드린 것일까.

“안녕들 하십니까” 이후에 쏟아지는 여러 대자보 글들은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떤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할까요” “행복하신가요”라고 묻지 않고, 몸과 마음의 안녕을 물었다. 정치도 답답하고, 경제와 일자리가 모두 꽉 막혀 있는데, 일상의 삶을 고단하게 살아가야 하는 나를 되돌아보고 싶다, 그리고 친구와 이웃은 어떠하신지,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여기에는 조직의 언어, 훈육의 언어가 설 자리가 없다. 민영화, 비정규직, 밀양 송전탑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위로부터 던져진 말이 아니라, 걱정과 배려의 말이 옆에서 옆으로 건네진 것이고, 그것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페이스북에 실린 지지 글들을 보자. “왜 가해자를 벌하지 않고 침묵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지, 왜 우리는 이런 강자들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서강대 정다운) “이번 대자보들을 보고 사람들이 참 할 말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억눌려온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고려대 이현민)

이렇게 ‘안녕들’에 대한 커다란 공감의 물결은 감각(sense)과 감성(feeling)을 건드렸기에 가능했다. 공감의 바탕에는 젊은 세대의 열망, 좌절, 분노, 무관심, 무기력, 포기의 정서(affect)가 깔려 있다. 이런 정서는 전달의 언어, 설득의 언어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경험, 몸으로 겪는 느낌이기 때문에 공감하고 전염되는 언어이다. 그래서 이들 ‘안녕들’의 말은 사실에 대한 평가와 판단,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몸에 각인된 감각의 문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안녕들’의 외침이 정권과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기대는 기대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조직하는 사람도 없고, 지향하는 가치나 구호가 부재함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성질상 감성과 정서의 마음들은 조직되지 않고, 운동의 언어가 아니기에 이런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다. 반짝 움직임으로 끝날까 우려하는 시선을 거두고, 이들 젊은 세대가 드러내고자 하는 정서의 징후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독해할 필요가 있다.

‘안녕들’에 담겨 있는 말들에는 이들이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의 정체는 근면 성실하고, 창의적이어야 하고, 거기에 감성과 공감의 능력까지 갖추면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약속을 더는 믿지 못하겠다는 좌절이 진하게 묻어난다. 행복은 행복을 원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꿈을 약속하는 ‘잔인한 낙관주의’ (cruel optimism, 로런 벌랜트의 용어)에 대해 ‘그건 더이상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서는 정치에 대한 저항이나 요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부가 느껴진다. 정치 무관심과는 다른, 정치로부터의 이탈. 젊은 세대가 삶의 현장에서 겪는 잔인한 현실을 낙관주의적 환상으로 포장하는 유혹을 더이상은 마다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그냥 떠나는 것 아닌가 싶다. 저항, 타협보다는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다는 느낌.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 자신만을 꼭 붙들고 싶고 나에게 공감하는 이웃과 함께 살아볼 길을 찾겠다는 다짐과 호소. 새롭게 생겨난 이런 감성의 문법을 ‘안녕들’을 계기로 찾아봐야 하지 않는가 싶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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