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합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다. 선택이 불가능한데 왜 동의 여부를 묻는가. 부분 동의가 가능해야 하는데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은행, 통신사, 인터넷 서비스 어디에도 가입할 수가 없다. 법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지 20년,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은 온 국민의 개인정보가 길거리에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나라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정보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 연예인뿐 아니라 보통 사람 누구나 신상 털이에 속수무책이다. 1억400만건의 신상정보가 어디에나 널려 있다시피 한데 대책은 여전히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으니 참 어이가 없다.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과 유출은 이미 확인됐지만, 정부와 국회가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과 시행령으로 합법적으로 수집과 배포를 보장하는 문제는 제대로 지적조차 되지 않는다. 몇 가지 핵심적 문제를 지적하면 이렇다. 첫째, 수집 정보의 종류와 배포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휴대폰 사용자가 5000만명에 육박한다. 3대 통신사가 수집하는 정보는 정보보호법에 근거해 “성명, 주민번호, 여권번호, 아이핀(i-pin) 번호, 생년월일, 내/외국인, 성별, 휴대폰 번호, 연계 정보, 중복 가입 정보, (청구지) 주소, 연락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계좌(카드) 정보 등 최소한의 식별 정보”라고 돼 있다. ‘최소한’의 정보란다.
미국 아마존은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이것도 거부할 수 있다) 등 3가지, 가장 큰 통신회사 버라이존은 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신용카드 정보, 사회보장번호, 운전면허번호 등을 요구한다. 물론 마케팅이나 소비자 조사 회사에 자신의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아마존은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 이름과 이메일은 제외한다. 개인의 신상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3대 통신사가 수집한 개인정보 취급 위탁 업체가 각각 1500개가 넘는다는 점이다. 에스케이텔레콤, 케이티, 엘지유플러스 모두 개인정보를 업무 유관 회사에 제공한다. 이를 법률로 보장해주는 걸 아는 휴대폰 사용자가 몇이나 될까. 수탁 업체에는 대기업도 있고, 조그만 대리점도 있다. 왜 통신회사가 현대백화점, 애경유지, 롯데쇼핑, 동부화재, 삼성화재에 내 개인정보를 제공하는가? 고객 서비스를 위해서란다. 정보 위탁과 제3자 제공은 다르게 규정되지만 실제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모든 은행과 보험회사, 인터넷 쇼핑몰, 정부 기관 등, 사실상 사기업, 공기업, 정부 부처 대부분이 각자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걸 법률로 보장해준다. 일본의 가장 큰 통신회사 엔티티(NTT)도코모는 11개 회사에만 가입자 정보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회사와 정보를 공유하는가.
끝으로 빅데이터와 주민등록번호 제도 문제. 빅데이터가 창조경제의 기반이고 블루오션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위치 정보, 교통카드, 상품 구매 기록(신용카드나 대형마트 회원 카드, 포인트 카드 등), 인터넷 서핑 기록은 정말 사적인 개인정보다. 내가 언제 무슨 물건을 구매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어디에 갔는지를 누구나 알게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주민등록번호는 이걸 가능케 해준다. 외국의 빅데이터는 신상 정보와 연결된 정보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은 주민번호와 이런 정보들을 연결시켜 놓고, 사실상 길거리에 방치해 놓고 있다. 정보 유출, 신상 털기 등의 사례들이 그걸 잘 말해준다. 외국 정보기관과 정보 처리 업체들은 이들 개인 신상과 연결된 빅데이터를 이미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최소한의 정보만 수집하고, 선택적 동의를 가능하게 하고, 위탁과 수탁을 필수적인 곳만 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를 무작위 번호로 전면 개편하고, 정부 기관을 제외한 어떤 회사도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정책 당국과 국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재강명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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