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하얼빈에서 창춘을 잇는 선을 한반도로 그으면 신의주와 평양을 거쳐 서울에 이른다. 다롄에서 압록강을 따라 단둥, 백두산, 회령, 도문을 거쳐 두만강변 훈춘, 나진, 하산의 삼각연결망에 닿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지난 2월 동북 3성과 모스크바(러시아 극동 관련 회의)에 다녀왔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대교가 거의 완공 단계에 들어섰다. 내년 개통 예정이란다. 신압록강대교 바로 앞에 신시가지가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고 있었다. 신시가지 중심에 한국의 에스케이(SK)그룹이 건설하고 분양하는 에스케이 단지가 이미 분양과 입주를 마쳤다고 한다. 걸어다닐 수 없을 만큼 규모도 컸다. 서울 강남 아줌마들이 투자한 집들도 상당수라는 소문도 있다. 그 옆으로는 개발이 멈춘 북한 땅 황금평이 누런 풀밭을 덮고 길게 누워 있었다.
지난 20여년간 거대 국경도시로 성장한 단둥 그리고 랴오닝성 성도인 선양 지역에는 최근 네 종류의 소수집단이 공존하고 있다. 가장 돈을 잘 쓰고 손이 큰 북한 사업가들. 이들과 거래하면서 사업을 착실히 불리고 있는 북한 출신 화교, 중국의 조선족들. 특히 이들은 개성공단 폐쇄 이후 사업 규모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대북한 무역에 종사하던 남한 기업인들. 북한의 핵개발 억제를 위해 발동한 개성공단 폐쇄와 5·24조치로 인해 남한 기업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던 반면 다른 세 집단의 사업은 크게 번창하고 있었다.
그 현장을 보기 위해 단둥 신시가지 안에 있는 보세구와 보세창고를 방문했다. 체육관 크기의 창고들이 다섯 동 이상 모여 있었다. 트레일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며 물건을 싣고 부리고 있어 입구부터 걷기가 조심스러웠다. 한 창고 안에서는 중국인 노동자 수십명이 일주일 전에 평양에서 도착한 등산복(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국 상표) 수만 벌에 ‘메이드 인 차이나’를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레이블이 없이 평양에서 기차나 트럭으로 실어오고, 중국 상표를 붙여 바로 인천으로 보낼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하루 전에 도착한 밀가루 수십 트럭분이 통관을 마치면 바로 압록강철교를 건너갈 것이라고 한다.
단둥 시내를 걷다가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나던 중국인에게 길을 물었더니, “평양에서 왔느냐”고 반문해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 일을 조선족 안내원에게 전하니, “그럴 거라”고 하면서 이 지역에서는 “가장 비싼 호텔에서 묵으면서 비싼 음식점에서 돈 잘 쓰는 사람들”이 ‘조선’ 사람과 ‘북한 출신 화교’라고 생각한단다. 반면 사업에 실패하고 어렵게 사는 남한 사람들을 ‘신조선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노숙자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한-중 수교 이후 성장했던 중국 동북지방에서, 2010년 개성공단 폐쇄와 5·24조치로 남북, 조-중 간 교역이 풍선효과처럼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첫 시작은 92년 인천~웨이하이(위해) 페리를 시작으로, 93년 칭다오 페리가 산둥 교역의 문을 열었고, 95년 다롄, 97년 산둥 페리가 동북 3성을 연결했다. 한-중 무역의 상당 부분이 조-중 무역과 겹쳐서 일어났다. 이곳에는 남북대결의 정치와 관계없이 다섯 개의 민족 집단이 물고 물리는 시장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셈이다.
국제정치 수준에서 일어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시장이 끊임없이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흐름은 중-러 국경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극동의 중국화를 우려하고 있었지만, 이미 극동러시아의 소규모 상권은 중국 상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으로 80㎞ 떨어진 우수리스크시는 ‘키타이스키 고로드’(중국인들의 도시)라 불린다. 인구 20만명 중 중국인 거주자는 2%. 그렇지만 상권은 모두 중국인들이 운영한다. 아무르강(헤이룽강)변 국경도시 블라고베셴스크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정부, 극동러시아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우려할 만한 사태이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통일대박 담론이 드레스덴 선언까지 왔다.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제도와 기반을 만들어 가지만, 사람과 시장이 만들어내는 힘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흔들리고 갈등해도 사람들은 필요하면 자신들이 원하고 필요한 걸 스스로 한다는 교훈을.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재강명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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