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문화부장
드라마 속 간접광고(PPL)가 다시 화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별에서 온 그대>가 계기가 됐다. 전지현이 입는 것, 바르는 것, 쓰는 것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며 ‘천송이 효과’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고, 최고의 톱스타라는 설정을 자연스레 활용한 간접광고 ‘모범사례’라는 평가도 쏟아졌다.
2010년 방송법 개정령 시행으로 지상파 방송의 간접광고엔 봇물이 터졌다. 법적으론 구분돼 있다지만 간접광고와 협찬의 경계도 모호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자동차를 비교하거나 브랜드, 제품명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전문화된 지는 오래다. 기업들이 쏟아내는 드라마 속 제품 보도자료는 인터넷에 거의 실시간으로 ‘카피’된다. 이런 현상을 개탄해봤자, 돌아오는 건 ‘꼰대’ 소리다. ‘네가 능력이 없거나 몸매가 안 따라주니 그렇지’라는 비아냥이 나올 게다.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도 규제완화와 방송사들의 수익성 악화 등을 배경으로 2007년 간접광고를 대폭 풀지 않았나.
그렇더라도 ‘드라마 속 책’은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과문한 탓인지, 주인공들이 특정 책을 읽어주다시피 하는 미드나 영드를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 속 돈 많고 잘생긴 남자주인공들은 절대 두껍거나 복잡한 책은 안 읽는다. <별그대>의 김수현은 석달간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만 주로 읽는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은 그 멋진 서가에서 <인어공주>만 펴든다. <주군의 태양>의 소지섭은 난독증인 덕에 <폭풍우 치는 밤에>가 계속 클로즈업됐다. 상류층 집안을 배경으로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스토리가 대부분인 요즘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건 동화나 에세이풍 책이다. 물론 책이 복선으로 잘 작용하거나 실제 작가가 좋아하는 책을 집어넣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주군의 태양> 때 해당 출판사는 간접광고가 아니라고 밝혔다. <별그대>의 경우는 “현금은 주지 않았다. 다만 서재의 책 채우기 등 현물지원을 했다”고 주장한다. 책 내용은 또 얼마나 따뜻한가. 연간 성인 1인당 독서량이 지난해 다시 0.7권 줄었다는데, 사람들이 드라마 때문에 한 권이라도 책을 보면 좋은 일 아니냐는 옹호론도 나올 만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세트에 쓰일 책을 빌려주는 정도였던 출판사의 제작지원은, ‘드라마셀러’의 잇단 탄생 속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며 갈수록 단가가 뛰고 있다. <한겨레>가 보도했듯(11일치 2면) 방영을 앞둔 한 드라마의 제작사는 최근 출판사들에 5억원을 요구했다. 2012년 기준으로 인문사회과학이나 문학 책을 출판하는 단행본 부문에서 연매출 100억원 이상 출판사는 18곳. 보통 출판계에선 광고·이벤트를 포함한 마케팅 비용이 매출액의 10%를 넘기 힘들다고 본다. 지난해 단행본 출판 사업체 4393곳 대부분은 꿈도 못 꿀 것이라는 얘기다.
독서 관련 프로그램은 잇따라 축소되면서 드라마에만 책이 나오는 티브이를 보며, 한 출판 관계자는 “제작비를 외주제작사에 떠넘기는 방송사들이 막장 드라마에 이어 출판계까지 막장으로 몰고 있다”고 한탄했다. 냉장고나 자동차 같은 제품과 달리, 책의 경우 큰 출판사 책이 꼭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양한 책들이 나오는 기반인 작은 출판사가 고사한 출판시장이 결국 독자들의 외면을 받으리라는 건 이 막장 드라마의 예상되는 결말일 터. 드라마 방영 기간 반짝 판매해 봤자 별 실익도 없으면서 이에 호응하는 몇몇 출판사도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넣어, 넣어, 넣어.”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 코너에서 박 대표는 뜬금없는 간접광고 상품을 드라마에 꽂으라며 귀를 막고 이런다. 이젠 박 대표 손에 책도 들릴 판이다.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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