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문화부장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근사한 내 방 전용 ‘전축’을 사리라던 어릴 적 로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10대 시절 애지중지 모았던 엘피는 몇차례 이사 도중 사라진 지 오래고, 오디오와 시디는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시피 하다. 한때 시디플레이어가 유행인가 싶더니 엠피3 시대를 지나 이제 듣는 건 스마트폰 음악이다. 몇년 전 음원사이트에서 매달 40곡을 내려받을 수 있는 상품에 가입해놓은 내가, 통신사 포인트를 차감하고 직접 내는 돈은 고작 월 2750원이다.
얼마 전 기타리스트 신대철씨가 음원을 판매하는 서비스업체가 ‘슈퍼갑’이면 음반 유통사는 ‘슈퍼을’이며 콘텐츠 개발과 기획을 하는 제작사는 ‘병’ 그리고 가수, 저작자, 실연자는 ‘정’이라며, 한국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비율이 9:1이 된 현재, 온라인 음원 시장 매출의 94%는 5개 업체가 나눠 갖고 그중 절반 이상을 1위 업체가 점유한단다.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다. 김건모와 신승훈이 100만장 이상씩 앨범을 팔았던 게 ‘진기한’ 일이라는 듯 회고된다. 시에프와 공연을 빼면 가수들이 노래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컬러링과 벨소리, 노래방 수익이 대부분이다. 신씨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면 작사·작곡자에게 0.2원, 가수에게 0.12원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나마 음원서비스 업체가 60%이던 몫을 지난해부터 40%로 낮춘 게 이 정도다.
이렇게 음악이 “단지 부가서비스로 존재”하게 된 시대, 그래도 어떤 이들은 ‘음악이 음악으로 존재하길’ 꿈꾼다. 고3이 된 큰아들도 그중 하나다.
올해 초, 우리 집은 아들과 오랜 신경전을 접었다. 예전엔 음악 좀 한다는 학생들이 기껏 서는 무대가 학교축제 정도였지만 요즘은 다르다. 공연에 정식 초청되는 ‘게스트’가 아니라 일종의 참가비를 내는 ‘라인업’이긴 하나 힙합을 하는 아들은 고1 때부터 부지런히 홍대 앞 클럽 등에서 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리 외향적이지 않은 아이가 동아리를 만들어 청소년 관련기관의 지원을 받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길거리공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나이 때 나보다 훨씬 잘 살고 있네 하면서도, 틈만 나면 ‘자극’을 준답시고 이런 말을 했다. “장기하나 버벌진트 봐. 요즘은 좋은 학교 나온 가수들이 더 잘나가.” “우린 집안이 평범해 오디션 프로에 나가 사람들 울릴 사연도 없잖아.”
지금의 입시 구조에서 대학에 가려면 얼마나 쓸데없는 공부를 해야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부모의 마음 한구석 학력에 대한 ‘허영심’을 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음악만으로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우려도 컸다. 음악은 나중에 취미로 하라고 닦달 당하던 아들이 어느 날 폭발하듯 울먹였다. “성적 떨어지는 건 안 분한데, 나보다 못하던 친구가 연습 많이 해 실력이 좋아진 걸 보면 너무 억울하다”고.
두달 전, 아들과 실용음악학원을 찾았다. 학원 선생은 첫날 “적어도 10년은 그냥 한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고3이 되어서야 정식 실기를 시작한 아들이 대학을 갈지, 다른 길을 갈지 알 수 없다. 그래도 그동안 용돈을 아껴 중고 장비를 사고 고물 넷북에 시퀀서 프로그램을 깔아 혼자 곡을 만들던 아이는 같은 길을 걸으려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음악을 하며 행복해한다.
최근 정부의 예술인복지 사업이 요란하다. 정부와 예술인복지재단은 이미 심사를 마쳤던 현장예술인 교육지원사업까지 폐지시켜가며 긴급복지지원 사업비를 늘렸다. 하지만 신씨가 말하는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고 긴급구호로 예술가들을 구할 수 있을까. 내 아들이, 음악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묻고 있다.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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