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문화부장
7, 9급 공무원 시험에 석·박사 출신들이 몰린다는 말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한 대학교수가 들려준 이 이야기도 그 연장선이거니 해야 할까.
서울 유명 사립대의 독문학 석사를 마친 그 교수의 제자는 출판사에 취업하면서 대학원을 나온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이름만 대면 아는 출판사다. “학력세탁이죠. 인문대 대학원 나온 학생 중 많아요. 전 쉬쉬했는데 어느새 공론이 됐더군요.” 정치인 등이 출신 학교를 위조하거나 이른바 ‘명문’ 대학원으로 출신 대학을 가려보려는 경우 쓰이던 단어가 또 다른 의미로 통용되는 셈이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일터조차 인문학 석사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낳은 풍경이다.
지방의 한 대학 인문계열 교수인 지인은 자신의 학과가 구조조정을 피해가며 올해 특성화 지원사업에까지 선정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취업률이 좋거든요.” 취업지도교수도 맡고 있는 그는 신입생들에게 늘 취업준비부터 권한다고 말했다. 인맥·학맥을 동원한 직업알선은 물론 안 되면 자기소개서를 직접 써준다고도 털어놨다.
솔직히 대학교수들의 불만에 난 냉소적인 편이었다. 뭐라 해도 대학교수는 65세 정년과 은퇴 이후엔 상대적으로 높은 연금까지 보장되는 직업이다. 부산대 강명관 교수가 지금 대학을 ‘침묵의 공장’이라 일갈했듯, 비판적인 목소리는 죽인 채 정부의 시혜성 지원금을 나눠 먹겠다며 매달렸던 것도 그들 아닌가. 사회나 사람들 삶과 접점을 찾는 책은 ‘거리의 인문학자’들로부터 나오고 대학교수들은 몇명 읽지도 않을 ‘등록 학술지’에 게재될 논문 편수 채우기에 급급하다. (하긴 교육부 장관 후보라는 분은 이도 혼자서 다 못 채웠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으로 교수 자리를 수십년간 채워온 학교에서 학생들은 지도교수에게 줄서기부터 배울 텐데 무슨 경쟁과 다양성을 기대할까.
구성원들의 안일 또는 무기력과 주변의 냉소를 틈타 대학은 야금야금 잠식당했다. 타깃은 독문학·불문학 같은 인문계열과 기초학문이다. 한 국립대 인문대학 교수는 그 과에 퇴임자가 생기면 신규임용을 하지 않는 ‘고사작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건 점잖은 편이다. 중앙대는 2010년 이래 77개 학과가 46개 학과로 통폐합됐다. 지난 4월 청주대는 사흘 만에 절차를 다 밟았다며 사회학과 폐지를 전격 결정했다. 교육부가 특성화 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의 평가에 정원 축소를 가산점 항목으로 못박은 올해, 각 대학엔 후폭풍이 불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대학입학 학령인구 감소’ 추세를 부인할 수는 없다. 논란이 있지만 2023년 입학정원이 학령인구보다 16만명 많을 것이란 예측까지 나온다. 인문학이 신성불가침의 전공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지금의 구조조정에서 전공의 경쟁력 잣대는 오직 ‘기업의 수요’뿐이라는 것이다. 중앙대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며칠 전 <조선일보> 칼럼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당신이 고3 학부모라면 ‘내 자식이 그 인문대학을 나와서 일자리 없이 평생 집에서 놀아도 괜찮으니 인문학과를 그냥 그대로 두세요’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대학 이사장이 인문대학 나오면 취업 못한다고 대놓고 협박하는 식이다. 입만 열면 창의적인 인간을 찾는 기업들이, 대학을 기업의 실무교육장으로 여기며 당당하게 자신의 비용을 전가하는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지난달 교수와 연구자 208명은 ‘한국대학학회’를 창립하며 관료와 기업이 주물러온 대학에 올바른 구조개혁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지금은 계란으로 바위 처바르기라도 필요한 때다.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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