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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동아시아 패권 각축의 경제적 속살 / 이봉현

등록 2014-07-06 19:21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외교나 전쟁 같은 국가간 관계에 경제가 저변의 이유인 때가 많다. 일본이 1941년 진주만 기습을 감행한 것도 석유가 발단이 됐다. 일본 소비량의 80%를 공급하던 미국이 중국 침공을 문제 삼아 대일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의 엘리트들은 “2년 비축분이 동나면 제국이 껍데기만 남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치명적 오판이었지만 진주만에 배치된 해군력만 궤멸시키면 2~3년은 일본 배들이 동남아 유전지대를 활보하리라 믿었다.

동아시아를 무대로 한 강대국의 패권 각축이 치열하다. 일본 아베 정권의 고노 담화 검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남한 선방문, 납북자 문제를 축으로 한 북한-일본의 접근 같은 일들이 요 몇주 사이에 이어졌다. 외교적, 군사적, 역사 해석상의 공방전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패권 다툼의 경제적 측면이다. 특히 에너지와 화폐(통화)는 패권 그 자체인데다, 여러 나라의 합종연횡을 이끌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거의 수입해서 쓰는 일본인들은 해상 수송로가 봉쇄되면 어쩌나 하는 뿌리 깊은 불안감이 있다. 일본 우익이 중국의 경제, 군사적 굴기에 안절부절못하며 재무장화를 서두르는 것은 믈라카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목덜미’가 섬뜩한 것도 주요한 이유이다.

일본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은 그래서 일본의 이런 원초적 불안에 기대고 있다. 미국은 중동지역의 해군력을 일부 아시아로 돌려 중국의 제해권 장악을 막아내면서, 중국 견제전략의 경제 쪽 버전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는 일본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우호적으로 공급하는 길을 열어놨다.

이런 전략적 기동이 가능해진 것은 최근의 셰일에너지 혁명 덕분이었다. 이제 미국은 ‘사우디아메리카’(사우디아라비아+아메리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석유-가스 생산 대국이 됐다. 생산과잉 우려에 최근에는 원유수출의 빗장을 40년 만에 풀기도 했다. 중동에 외교, 군사적 역량을 집중해 온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은 아시아에 눈돌릴 여지가 생겼고, 이 지역에서 석유와 가스를 지렛대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화폐전쟁은 패권 다툼의 또 다른 얼굴이다. 2차 대전 후 확립된 달러패권은 미국이 가진 실질적인 힘이다. 특히 무역에 큰 영향을 주는 환율은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결정적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고(엔화 강세)를 강제해 일본에 ‘잃어버린 10년’의 씨를 뿌린 것도 미국이었다.

그런 미국이 최근 일본 정부의 엔저(엔화 약세) 공세에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일본을 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아베 같은 협조적인 정권이 경제 부진 때문에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이런 미국의 ‘사인’을 읽은 아베 정권은 “통화량을 2년 안에 2배로 늘린다”는 기세로 돈을 풀어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덕분에 일본 기업은 수출 채산성이 높아지고 구인난이란 소리가 일부에서 나올 만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중국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에 대한 국제적인 회의감이 높아가는 분위기를 활용해 위안화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6월 런던에 위안화 청산거래소를 두기로 했고, 시진핑 주석의 방한 때는 한-중 간에 무역결제 직거래 합의가 이뤄졌다. 위안화를 매개로 두 나라의 금융통합이 한 걸음 진전된 것이다.

엔화 약세로 국내 수출 중소기업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렇지만 패권 다툼의 큰 그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서 하루이틀에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사는 국민들은 챙겨볼 것이 많아 바쁘다.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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