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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김택진과 제프 베조스 / 이봉현

등록 2014-08-03 18:25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올 시즌 프로야구를 재미있게 하는 것으로 1군 2년차 엔씨(NC) 다이노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하다는 점이 꼽힌다. 신생 구단의 급성장에는 구단주 김택진(47)의 야구 사랑이 깔려 있다. “야구는 나를 가슴 뛰게 한다”는 김택진의 시선을 느끼며 구단, 감독, 선수가 없던 힘도 짜낸다.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으로 시가총액 4조~5조원대의 기업을 일군 엔씨소포트 창업자 김택진은 번 돈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어느 행사장에서 마주친 그는 “인문, 자연과학 기초서적이 우리나라에는 크게 부족하다”며 이런 책을 시리즈로 낼 아이디어를 묻기도 했다. 회사에 사회책임(CSR) 부서를 만들어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프로야구단을 창설하겠다고 했을 때,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청소년을 야구장으로 불러내겠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뭔가 허전했다.

그가 다시 생각난 것은 달포 전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에 견학 가서였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등 전통 매체에서는 독보적이었던 이 신문은 시대 변화에 맞춰 디지털 미디어로 재탄생하려는 노력이 한창이었다. 사옥은 활기가 넘쳤다. 적자와 감원 소식만 들려오던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라 했다. 지난해 8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개인재산 2억5천만달러(약 2500억원)로 신문을 인수하면서 생긴 변화이다.

베조스는 인수 뒤 직원들에게 “1만년을 염두에 두고 투자하겠다”고 했다. 얼마든지 기다려 줄 테니 지구촌 어디서나 읽는 디지털 매체로 거듭나기 위한 실험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베조스의 개인재산이 250억달러(25조원)이니 1년에 1억달러(1천억원)씩 적자를 내도 250년은 끄떡없다는 얘기가 농담처럼 돌았다. 베조스만큼은 아니지만 김택진 사장의 주식평가액도 1조원이 넘는다.

외국은 백만장자들이 언론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2007년 만들어진 미국의 비영리 온라인매체 <프로퍼블리카>는 헤지펀드로 돈을 번 샌들러 부부가 매년 1천만달러씩 지원하는 자금으로 운영된다. 월가의 비리를 파헤치는 등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탐사보도로 2010년과 2011년 연속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에서 독지가가 2005년부터 5년 동안 비영리 언론사에 기부한 총액이 1억2800만달러(약 1300억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게임, 모바일, 바이오 산업에서 억만장자가 속출하는 등 정보기술(IT) 혁명이 부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게임업체 넥슨(NXC)의 김정주 회장은 1조7천억원대,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1조6천억원대,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은 1조2천억원대의 주식을 갖고 있다. 금융에서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처럼 수백억~수천억원을 번 인물도 많다.

이들이 꼭 언론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가치있는 일의 경중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다만 좋은 언론 매체는 하나만 있어도 연쇄반응을 불러와 부레옥잠이 혼탁한 물을 정화하듯 5천만의 행복 수준을 높일 수 있다. ‘풍요 속의 빈곤’처럼 매체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보도 내용은 부실해져 좋은 언론에 대한 갈증은 커가고 있다.

전환기에 디지털을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기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지 않다. 경험상 마중물로 한해 50~100억원이면 정권, 자본, 노조 눈치 보지 않는 좋은 언론을 키워낼 수 있다. 게임으로 돈을 번 허민 구단주가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에 지원하는 액수가 한 해 50억원이라는데, 언론은 왜 야구만큼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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