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사회부장
“하루를 해도 총장은 총장 아니겠어요?”
정권의 이런저런 ‘분부’에 너무 고분고분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걱정을 전해 듣던 검찰총장의 입에서 이 한마디가 툭 불거져 나왔다.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얘기로 들었다. 그러나 그는 정권과 별다른 불화 없이 2년 임기를 마쳤다. 그의 재임 기간을 두고 검찰이 검찰다웠다고 말하는 내부 인사를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또 다른 검찰총장은 애초 청와대의 ‘이고초려’에도 적임자가 못 된다며 고사했다.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이 두번째 퇴짜를 맞고 돌아간 날, 그는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에 앉아 있다 텔레비전 속보를 보고서야 총장 임명 사실을 알았다.
그의 취임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국민들이 검찰을 불신하는 이유는 검찰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민은 검찰이 이른바 정치적 사건 등 중요 사건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유리하게, 또는 여당과 야당에게 상이한 잣대를 가지고 수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임기 중 실천할 과제로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검찰권 행사”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권력형 부패’ 혐의로 대통령의 아들 셋 중 둘을 구속했다. 최고 권력자의 ‘그림자’로 통하던 정권의 2인자도 구치소로 보냈다. 북악산 자락에선 정권 살리라고 임명장 줬더니 거꾸로 죽이려 든다는 등속의 험담과 악설이 쏟아졌다. 그는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사석에서 “취임 첫날부터 양복 안주머니에 늘 사표를 넣고 다녔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임기의 절반도 채우기 전 그의 사표를 현실로 만든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을 제외하면, 그가 총장일 때 검찰이 검찰다웠다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말한다.
그 이명재 아래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으로 대통령의 둘째 아들을 구속한 이가 지금의 검찰총장이다. 김진태는 총장직을 열망했다. 그럴 만한 커리어도 지녔다. 검찰 안팎의 기대도 많이 받았다. 지난해 12월3일 취임식에서 그는 “‘바르고 당당하면서 겸허한 검찰’로 거듭나자.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어떠한 시비도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지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비등하자 그는 ‘돼지머리 수사’라는 이름으로 유병언 일가를 겨눴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계엄령이 내린 것도 아닌데 군까지 불러들여 석 달 넘게 찾았던 유병언은 검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처벌불가의 존재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9월엔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 강화’, ‘실시간 인터넷 모니터링’ 방침을 내놓아 거센 비판을 자초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의심하는, 차마 기사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을 끼적거린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해 “기소 안 한다”던 총장의 공언은 얼마 못 가 뒤집혔다.
지금 총장이 있는 서초동 대검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총장님에 대한 청와대의 신임이 두텁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 일선에선 “총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 총장 스스로 ‘특별한 사이’라고 부르고, 그를 “훌륭한 검사”라고 평한 이명재 전 총장은 지난해 이맘때 아마도 생애 처음(?)일 장문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검찰이 신뢰를 얻으려면 권력과 거리를 두는 게 핵심이다. … 총장이 잘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고집이 있어야 한다.”(<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루를 하든 임기를 채우든 중도에 물러나든, 결국 남는 것은 취임사가 아니라 발자국이다.
강희철 사회부장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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