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청와대의 뜻’과 검찰사용법 / 강희철

등록 2015-03-08 18:39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대통령을 겨눴다는 검사의 죽음이 뜨거운 현안으로 달아오를 즈음 이곳에선 뚱딴지같이 ‘논두렁 시계’가 새삼 화제가 됐다. 누군 ‘현직’의 의혹을 건드렸다 목숨까지 잃었다는데, 세상 떠난 ‘전직’의 6년 전 레퍼토리를 되새김질하는 한심함이라니.

이인규라는 전직 대검 중수부장이 왜 기자들만 만나면 ‘각설이 타령’처럼 그 사건을 거론하는지 얘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그 검찰 간부가 문득 이런 질문을 꺼냈다. “요즘 검찰 지휘부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무엇일 것 같으냐.” 대답이 신통치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는지 그는 “아마도 ‘청와대의 뜻’일 것”이라며 “예민한 사건일수록 처리 방향을 놓고 청와대의 뜻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말들이 많다”고 했다.

검사, 특히 고위직들은 왜 청와대의 뜻을 알고 싶어하는가. 그것은, 일반 사회와 하등 다를 바 없이, 인사권자의 ‘심중’을 잘 읽어야 더 좋은 보직에 접근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청와대의 뜻은 검찰에 어떻게 관철되는가. 대통령은 검찰 ‘사건’을 지휘할 법적 권한이 없다.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법무부 장관만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검찰청법 제8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일종의 칸막이를 쳐놓은 것인데, 그럼에도 대통령의 뜻은 민정수석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검찰에 전달된다.

검찰 내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교지’의 전달 방식이 박근혜 정부 들어 “훨씬 심플해졌다”고 말한다. “과거엔 검찰총장을 통해야 했지만, 지금은 여차하면 건너뛰어도 무방하다”는 말까지 들린다. 대검 중수부 폐지(2013년 4월)로 직할 수사부서가 없어진 총장은 사실상 상징적인 수장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사이 검찰의 실세로 부상한 것은 서울중앙지검장이다. 휘하 검사의 수도 전국 최대 규모이지만, 대검 중수부가 없어진 뒤로 정권과 관련된 주요 수사가 모두 그의 지휘 아래 이뤄진다. 검찰총장은 검사로서 마지막 자리이지만, 서울중앙지검장에겐 ‘차기 총장’이라는 목표가 있다. 최고 권력자에게 누가 더 충성스러울지는 불문가지다. 요컨대 이해가 맞으면 청와대와 서울중앙지검장은 ‘직거래’도 가능하다.

“(중앙지검장이) 보고를 안 하면 총장은 알 수가 없다. (청와대가) 다음 총장을 약속하고 엿 바꿔 먹으면 그만이다. 연수원 기수로 봐도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시스템은 굉장히 위험하다.”(검찰 고위 인사) 실제로 ‘정윤회 사건’과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 사건’ 수사가 진행될 때 김진태 검찰총장은 “서울중앙 사건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간부회의에서 여러 차례 발언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보 진영에 속한다는 어떤 이들은 ‘국회판 김영란법’ 지지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 등 개혁을 위해서는 대검 중수부 폐지와 검찰총장 권한 축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어제 비대한 검찰권을 손보는 것이 개혁이라고 부르짖던 사람들이 오늘 검찰에 ‘별건 수사’의 길을 터주자고 소리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요령부득의 아이러니다. 신고된 ‘공직자’의 계좌를 열어보고 통화내역을 뒤지고 관련자를 조사할 검사가 그 과정에서 또다른 ‘혐의’를 찾아내도 그저 못 본 척 덮어주길 기대라도 하는 것일까. 최초 신고 단계부터 권력의 불순한 의도가 깃든 별건 수사는 없을 것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강희철 사회부장
강희철 사회부장
2009년 이맘때 이인규는 전직 대통령 수사를 즐기기라도 하듯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를 기자들 앞에서 읊조렸다. 그러고 두 달 뒤 그 사달이 벌어졌다. 중수부가 없어졌다고 잠재적 ‘이인규’들도 사라졌을까.

강희철 사회부장 hck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1.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폭주하는 남성성 속 지질한 ‘킬-방원’의 향연 2.

폭주하는 남성성 속 지질한 ‘킬-방원’의 향연

시진핑은 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을까 3.

시진핑은 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을까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4.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서부지법 폭동 군중의 증오는 만들어진 것이다 [박현 칼럼] 5.

서부지법 폭동 군중의 증오는 만들어진 것이다 [박현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