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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불량 아빠’의 반성문 / 이종규

등록 2015-05-06 19:15

꼭 1년 전 이맘때, 한국 사회에는 성찰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수많은 생명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의 충격과 슬픔은 분노로, 다시 반성으로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교복 입은 아이들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길에서 학생들을 마주치면 꼭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아들딸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더 이상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지 않는다거나 잔소리를 확 줄였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분노하고 각성하는 엄마들을 언론은 ‘앵그리맘’이라고 불렀다.

앵그리맘은 세월호의 아이들이 죽기 직전까지 거듭 들어야 했던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서 우리 교육의 근원적인 문제를 읽어냈다. 바로 순응과 통제다. 한번 생각해 보자. 배가 시시각각 기울어 가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건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착한 아이들은 그 말을 따르다 죽음을 맞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학교에서 수없이 들었을 말, ‘쓸데없는 생각 말고 시키는 대로 해’와 조응한다. ‘가만히 있지 않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각성이 일었다.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앵그리맘의 이런 교육적 각성을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서는 잠을 자고 있는 여드름투성이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이렇게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몇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밤늦도록 피시 게임을 하는 모습도 밉지가 않았다. 미래를 위해 오늘 아들의 행복을 유보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의 각성의 기운이 확산돼 교육이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익숙한 일상’으로의 복원력이 너무 강한 탓일까? 성찰의 유효기간은 짧았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4·16 교육체제’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분출했던 변화 열망은 급속하게 식었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행복과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을 위한 진지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원가는 여전히 불야성이다.

나부터 반성문을 써야 할 것 같다. 성찰을 멈추고 ‘불량 아빠’로 돌아간 부끄러운 부모이기에…. 어느덧 아들에게 잔소리와 훈계를 늘어놓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커서 뭐 먹고 살래’, ‘이 험한 세상…’류의 협박도 은연중에 튀어나온다. 교육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지금의 모순 덩어리 교육에 아이가 잘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겨레>의 세월호 참사 추모 기획 ‘잊지 않겠습니다’에 실린 세월호 엄마들의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편지에 가장 자주 나오는 표현이 ‘꿈속에서라도 한번 안아보고 싶다’, ‘다음 생에도 엄마 딸(아들)로 와줘’라는 말이다. 사랑한단 말 많이 못해주고, 잘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자책도 많다. 편지를 읽으면서 자식에 대해, 부모의 역할에 대해, 그리고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삶과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도 고통 속에 숨져간 아이들의 죽음을 잊지 않는 방법일 수 있다. 성찰은 변화의 출발점이고, 변화가 없으면 아이들의 불행과 고통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행복해야 한다.

이종규 사회2부장
이종규 사회2부장
야누시 코르차크의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그들(아이들)에게 오늘의 권리를 고백하지 않은 채 내일의 의무로 짐을 지운다.” 코르차크의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자. ‘왜 아이들의 오늘이 그들의 내일보다 더 못하단 말인가?’

이종규 사회2부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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