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덴마크로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교육현장을 둘러보는 게 주된 목적이었지만, 덴마크의 복지제도와 사회 분위기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민들이 ‘사회’라는 큰 저금통에 저축을 하며 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국민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고, 대신 높은 수준의 복지로 되돌려받고 있었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거동이 불편해 노인요양시설에 있던 한 할머니는 “손자들을 자주 못 보는 것 말고는 불편한 게 없다”고 했다.
이처럼 사회안전망이 튼실하니, 교육도 우리 처지에서 보면 유토피아에 가까웠다. 학생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아 성장을 목표로 하는 질 높은 교육을 받았다. 대학 서열도 입시 경쟁도 없었다. “우리 교육의 목적은 엘리트 육성이 아니라 위대한 시민을 기르는 것”이라는 현지 교육 전문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참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했더랬다.
갑자기 10년 전 일이 떠오른 것은, 최근 <덴마크 사람들처럼>이란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저자는 “나는 운 좋게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단언한다. 책의 원제도 ‘덴마크 사람처럼 행복하게’이다.
덴마크 국민들의 행복도가 높다는 것은 국제 지표로도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5 더 나은 삶 지수’에서 삶의 만족도 1위를 차지했고, 유엔이 펴내는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도 2012년과 2013년 연속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덴마크 사람들처럼>의 저자는 덴마크에서 복지국가가 유지되는 비결로 신뢰를 꼽는다. 저자가 인용한 자료를 보면, 덴마크 국민의 78%가 이웃을 신뢰했다. 다른 나라 평균(25%)의 3배가 넘는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84%나 됐다. 가장 청렴한 나라(국제투명성기구 조사)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세부담률(48%)은 이런 신뢰의 산물이다. 소득세 최고 세율이 60%에 이른다. 그럼에도 세금이 많다고 느끼는 국민은 20%에 그친다.
한국 현실로 돌아오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국가가 자신의 삶을 보듬어줄 것이란 믿음이 부족하다 보니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하다. 세금을 내느니 악착같이 제 몫 챙겨서 스스로 앞가림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권력의 부패와 가진 자들의 탈세 등 부조리를 목도해온 탓이 크다. 급속한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급증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정부라면 국민들의 납세 의지를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최근 국민연금 논란에서 보여준 정부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제안에, ‘1702조 세금폭탄’ ‘재앙에 가까운 부담’ ‘세대간 도적질’ 등의 자극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이래도?’ 하고 국민들을 협박하는 듯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오이시디 평균(12.6%)의 4배에 육박한다. 노인 자살률은 부동의 1위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세대간 갈라치기’를 통해 복지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키려 하지만, ‘빈곤율·자살률 1위’는 우리 모두의 미래다.
다행히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가 꾸려졌다. 모처럼 정치권이 ‘밥값’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1930~40년대 ‘복지국가 스웨덴’의 틀을 짠 페르 알빈 한손 총리는 ‘국민의 집’을 주창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민의 집’은 못 지을망정, 노인을 고려장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종규 사회2부장 jklee@hani.co.kr
이종규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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