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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지당 사또’의 전성시대? / 권혁철

등록 2016-06-19 16:43수정 2016-06-19 21:43

박근혜 대통령과 전국 시도지사들이 가끔 간담회를 한다. 행사장에서 시장과 도지사들끼리 먼저 모였을 때는 중앙정부 성토가 터져나온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에는 관심 없고, 기초연금, 보육료 등을 자치단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방을 졸로 보고 있다’는 불만이다.

그런데 막상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박원순 서울시장만 쓴소리를 한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은 대장부이고, 다른 시도지사들은 졸장부들일까. 박 시장이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을 하는 것은 중앙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적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 시장의 힘은 높은 재정자립도다.

행정자치부 자료를 보면, 서울시 재정자립도는 84.73%로 전국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높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단체가 살림에 필요한 돈을 얼마나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자체 수입으로 살림을 꾸릴 수 없는 자치단체는 중앙정부가 주는 지방교부세, 국고보조금 등에 의존해야 한다. 형편이 어려운 시도지사들이 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하기 힘들다.

최근 박원순 시장이 보건복지부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힘도 ‘튼튼한 곳간’에서 나온다. 경기도 성남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를 밀 수 있는 것은 살림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성남시 재정자립도(61.6%)는 226개 전국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5위다.

나는 이재명 시장이 광화문 단식까지 하며 반대한 지방재정 개편안에 대해 처음에는 ‘지역재정 격차 해소’로 판단했다. 제힘으로 살 수 있는 성남·수원시 같은 부자 지자체(불교부단체)의 돈 좀 깎아서 가난한 곳에 나눠주는 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군 조정교부금의 배분방식을 변경하고 법인지방세의 공동세 전환을 뼈대로 하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을 들여다본 뒤 ‘지방자치 죽이기’라고 생각을 바꿨다.

먼저 문제는 ‘시행령’이었다. 이번에도 정부는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36조 제3항을 개정해 조정교부금의 배분기준을 바꾸려고 했다.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방재정 문제를 여야 협의를 거친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주무르려는 시도가 논란의 씨앗이었다.

다음은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발표가 불을 질렀다. 정부는 지난 4월 지방재정 개편안을 발표하기 전까지 당사자인 기초자치단체들과 어떤 협의도 하지 않았다. 지방재정 개편안을 대부분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시장들이 반대해 여야 대결 구도로 비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디비쪼고(엉뚱한 일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낸 안상수 창원시장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대한 비판이다. 안 시장은 지난 16일 오후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지방재정제도 재편 반대 규탄대회’에서 “자치단체의 재정수요와 행정여건을 무시한 획일적 개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방재정 개편안이 지역재정 격차를 해소한다면 나는 지지할 생각이다. 경기도 6개 시에서 5천억원가량 돈(조정교부금)을 뺀 뒤 그만큼 중앙정부가 보통교부세를 줄여 다시 220개 전국 시·군·구에 나눠주면 한 곳에 20억원쯤 돌아간다.

권혁철 지역에디터
권혁철 지역에디터
20억원으로 지역재정 격차가 해소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성남시의 경우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 같은 정책을 펼 돈이 없어지고 정부가 주는 돈에 기대야 한다. 결국 이재명 시장처럼 꼬리를 잡고 몸통을 흔드는 ‘변방 사또’가 사라지고, 정부에 ‘백번 지당하십니다’를 외치는 ‘지당 사또’들만 남게 될 것이다.

권혁철 지역 에디터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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