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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계곡 접근권을 보장하라! / 신승근

등록 2016-08-07 19:00수정 2016-08-07 19:24

신승근
라이프 에디터

`휴가철, 계곡에 접근할 권리를 달라.’

‘사드 배치’ 등 묵직한 현안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한 상황에서 무척 한가한 얘기다. 하지만 찜통더위와 열대야를 피해 떠나는 계절, 휴가철 아니면 언제 말할 수 있겠나.

국립공원 등 생태보호구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곡은 자유로운 접근이 허용된다. 그리고 계곡 주변 하천부지는 원칙적으로 개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점용허가를 받아 특정인이 이용권을 확보한 일부 지역을 빼고는 누구든 자유롭게 돗자리 펴고 시원하게 발을 담글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 유명 계곡에선 ‘법보다 주먹, 합리보다 생떼’가 앞선다.

추억을 되뇌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초등학생 시절 솥단지를 메고 4㎞를 걸어 다다른 공릉천에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는 천렵을 통해 자연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 때문인지 요즘도 여름이면 주로 물가를 찾는다. 포천 백운계곡, 가평 명지계곡, 양평 벽계계곡…. 두 아이와 함께할 물 맑은 수도권 계곡이 주요 행선지다.

하지만 이곳에선 어김없이 불쾌한 경험과 마주한다. 지난해도, 올해도, 예외 없다. 그 많은 계곡, 그 길고 긴 물줄기 옆 평탄한 돌무더기나 모래사장 위 어디에도 편히 쉴 공간이 없다. 계곡을 따라 빼곡한 음식점과 캠핑장의 허락 없이는 물에 접근할 수 없다. 자릿세를 내지 않고는 돗자리 한 장 펼치기도 어렵다.

올여름 명지산과 연인산에서 흘러든 맑은 물이 모여 십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골짜기를 형성한 명지계곡을 위아래로 훑었다. 하지만 접근이 용이한 완만한 경사지나 잔잔한 물가, 자리를 펼 만한 평탄한 돌밭이나 모래톱은 어김없이 캠핑장과 펜션이 틀어막았다. 분명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인데 자리를 펼치면 “사유지다. 나가라”고 말한다. “하천부지는 접근이 자유롭다”고 항변하면 “우리가 주변 환경을 관리하기 때문에 자릿세를 받는다”며 돈을 요구한다. 물에 발이라도 담그려면 8만원 안팎의 자릿세를 내야 했다. “대강 돈 주고 자리 잡자”는 가족들의 아우성에 번번이 주저앉는다. 포천 백운계곡, 양평 벽계계곡도 다르지 않다.

공유수면, 대부분 국유지인 계곡에서 왜 자릿세를 내야 하는지. 관할 군청에 물었다. “계곡에 정식으로 임대료를 내고 점유한 곳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 국유지다.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사유지라 주장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으니 “군청 직원인 우리도 쉽게 항의할 수 없어 건건이 점유허가를 받은 것인지 프로그램을 확인해야 하는데, 여행객이 항의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며 “다투지 말고 신고하라”고 한다. 놀자고 왔다가 죽자고 분쟁에 매달리는 꼴이다. 그래서 한번도 신고한 적이 없다.

이런 때마다 미국에서의 경험을 떠올린다. 가족이 미국 대륙을 떠돌며 캠핑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국립공원, 주립공원뿐 아니라 강, 계곡 등 주요 하천 주변에 민간 음식점은 거의 없었다. 대신 정부가 마련한 휴게실과 잔디밭, 야영공간, 언제든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휴게실은 대개 간단한 음료와 견과류 자판기 몇대와 화장실이 전부였지만, 바비큐 시설 등은 대개 무상으로 이용했다. 야영을 할 경우에만 10달러 안팎의 이용료를 냈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려는 게 아니다. 다만, 군청·시청 홈페이지에 관광명소로 내세운 유명 계곡이라면 적절한 진입로를 확보하고, 돗자리 정도는 마음 놓고 펼칠 공간을 제공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대통령이 국내 여행으로 내수진작에 도움을 주라고 훈계하지 말고, 이런 인프라를 갖추면 안될까. 이 여름, ‘계곡 접근권’을 주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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