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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세월호 무의식

등록 2016-08-08 18:15수정 2016-08-08 19:11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이십여년 전에 이민 간 고교 동창이 한국을 방문했다. 공유할 세월이 40년 전뿐이라 까까머리 시절만 회상하다가 친구의 제안으로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찾았다. 희생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친구는 간간이 눈시울이 젖었고 기도했고 노란 리본을 달았고 이 나라에 살지도 않으면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야 친구는 심호흡을 했다. 그 먼 나라에서 40년 전 우리 또래였던 아이들이 생각날 때마다 악몽에 시달렸다는 고백을 들었다. 세월호에 대한 불안과 죄의식은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거의 무의식적이다.

참사 초창기 류현진 선수는 메이저리그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노란 리본을 달았고 1억원을 기부했고 세월호 희생자 돕기 사인회를 열었다. 10년 전 바로 그 배를 타고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고교 시절의 경험이 있어서였다. 세월호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그의 말은 세월호 무의식이 우리들 마음속에 어떻게 내재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

무의식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는 의식 수준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저 밑동의 거대한 심리적 에너지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전체 방향성을 결정하고 움직이는 힘이다. 세월호 참사를 ‘국민 트라우마’로까지 규정할 수 있는 건 그런 무의식성 때문이다. 저항할 수 없이 모든 사람이 즉각적이고 생생하게 나를 대입하는 사건이 세월호 참사다. 40년 전 열일곱의 어린 내가 컴컴한 바닷속에 있는 듯 진저리쳐지고 지금 수학여행을 떠나는 자식 또래들을 보면 조마조마하다. 생생한 내 일일 수밖에 없다.

내 가방끈이 끊어지거나 옷이 찢기는 외부 충격이 아니라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일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나. 불가능한 일이다. 세월호에서 비롯한 불안과 죄의식, 두려움이 부적절한 분노나 외면, 피로감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우리에게 세월호는 이제 지울 수 없는 불도장이다.

아무도 그렇게 분석하지 않았지만 지난 4·13 총선의 여소야대 결과는 그런 세월호 무의식이 적나라하게 투영된 결과였다. 나와 내 가족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게 누구든 어디에 있든 무의식 수준에서 이미 알고 있으니 의식 세계에 집단적으로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렇게 여소야대가 된 야당이 특조위 중단에 대해서 보이는 정략적 처신은 어리석다. 세월호 문제만 처리하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문제가 해결돼야 그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의 순서라는 게 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귀금속도 중요하고 부모의 유품이나 족보도 챙겨야 하지만 가장 먼저 할 일은 함께 있던 사람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일이다. 금고를 들고 나오느라 자식이 불타 죽었다면 잘 살 수 있나. 족보부터 챙기느라 아내가 중화상을 입었다면 가문의 영광이 대대손손 이어지겠나.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보장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은 정부와 국회, 한국 사회에 보내는 마지막 구조요청이다. 특조위를 중단시킨다고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이제 없다. 세월호 특조위는 자식 잃은 부모들이 자기 목에 칼을 겨누는 듯한 상황의 연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궈낸 조직이다. 세월호 무의식이 법적인 형태로 집대성된 특별한 조직이다. 그런 민심을 읽지도 못하고 반영할 능력조차 없는 집단이 민의의 대변자란 이름을 달고 있어선 안 된다. 정치권에서 이 구조요청을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외면하거나 지체하면 반드시 함께 죽게 된다. 세월호 특조위가 해체되는 사태가 온다면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정치권도 해체되고야 만다. 국민의 무의식은 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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