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디터 백남기 농민의 장례가 치러졌다. 지난해 11월14일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1년 만이다. 장례가 끝났지만, 백남기 농민 유족은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는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아버지의 장례를 모시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 폭력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정부의 책임있는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 우리 가족들의 첫번째 싸움이요, 농민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기다리는 것이 백남기 ‘농민’ 가족들의 두번째 싸움이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12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자신의 밭에서 밀을 손으로 꾹꾹 눌러 심었고, 이틀 뒤 서울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했다. 백남기 농민이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외친 것은 쌀값 보장이었다. 고인은 ‘17만원 쌀값을 21만원으로 올리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지키라고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차디찬 물대포 줄기였다. 요즘 농민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도 웃을 수가 없다”고 한탄한다. 쌀값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지 쌀값은 80㎏ 기준 12만9628원으로 20년 전인 1996년 13만3603원보다 낮다. 지난 9월 수확을 앞둔 논을 갈아엎은 농민들은 요즘 전국 도청과 시청 정문 앞 등에서 ‘나락 쌓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농민들은 자식같이 키운 나락을 참담한 심정으로 야적하며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쌓인다. 박근혜 정부는 쌀값 21만원 공약을 지켜라”고 요구한다.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하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농업 공약에 쌀값 21만원을 약속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농민들은 “지난 대선 당시 쌀값 21만원을 보장하겠다고 새누리당에서 농촌 마을마다 빨간 현수막을 걸어놓았다”고 반박한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웃는 얼굴 사진과 함께 쌀값 21만원대를 약속한 빨간색 펼침막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통령의 말 바꾸기에 화난 농민들은 “벼 갈아엎기 전에 쌀값 21만원 공약 파기한 대통령부터 엎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쌀값 폭락에 대해 쌀 생산 증가와 소비 감소라는 수급 불균형이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쌀값 하락은 농민·소비자 탓이란 이야기다. ‘이 모든 게 남 탓이고 내 책임은 없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단골 어법이긴 하지만, 너무나 무책임하게 들린다. 그럼 정부는 뭘 했나 궁금하다. 정부는 뻔히 예견된 쌀 수급 불균형 대책을 제대로 세웠을까. 농민들은 “정부가 쌀 재고 관리 대책을 실효성 있게 제때 했다면 재고 과잉 문제가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무능한 살농정책으로 쌀값 대폭락이 일어났다”고 반박한다. 각종 통계 수치를 찾아보면, 올해 쌀값 폭락이 정부 재고 관리 실패라는 농민들의 항변이 설득력 있다. 쌀 소비량 감소는 연간 8만~9만t인데 재고량 증가는 이보다 더 많다. 수급 불균형의 주된 원인이 쌀 소비량의 감소만이 아니라 정부의 즉흥적 농정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쌀 수급 조절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 없이 흉년에는 증산을 독려하고 풍년에는 재배 면적을 줄이는 땜질식 처방을 했다”고 지적한다. 오는 12일 서울 민중총궐기대회에 전국 농민 3만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정부는 3만명의 ‘백남기들’에게 다시 물대포를 쏠 것인가 묻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 말처럼 ‘혼이 비정상’인 정부가 아니라면 물대포가 아니라 ‘쌀값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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