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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200번의 바다 / 조혜정

등록 2016-11-09 18:23수정 2016-11-09 20:11

조혜정
ESC팀장

200번째 입수. 지난 5일 오전 11시8분, 제주 서귀포 문섬 불덕 포인트. 2012년 1월19일, 태어나 첫 다이빙을 한 지 4년10개월 만에 다이빙 로그(횟수) 200을 넘겼다.

30만 민주시민이 촛불을 드는 ‘이 와중에’ 다이빙을 하러 간 건, 그럼에도 덕질기를 써야 했기 때문이라는 비겁한 핑계는 대지 않겠다. 덕질기는 매주 쓰는데 정작 덕질을 못 하니 바다가 너무 간절해졌다. 마음은 광화문에 둔 채 바다로 뛰어들 땐 내가 이러려고 다이버를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제법 큰 자리돔들이 떼 지어 지나가는 모습에 금세 행복해졌다.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문섬에 몇 번을 들어갔는데, 그게 잠수함 엔진 소리라는 걸 모를 리 없다. 누구는 조류에 떠밀려가다 잠수함을 본 적도 있다지만 난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신경 끄고 선두 그룹을 따라 계속 가려는데 어라, 이분들이 갑자기 아래쪽으로 방향을 튼다.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온 건 굉음의 주인공, 잠수함.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너를 이제야 보는구나, 기뻤다.

버디(다이빙 짝)와 눈이 마주쳤다. 나랑 제일 많이 다이빙한 이 친구가 주머니 안에서 손수건만한 천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뭐지? ‘물벗! 조혜정 축 200log’. 나랑 두 번째로 많이 다이빙한 친구가 새벽같이 일어나 한자 한자 정성스레 써준 거였다. 그들과 함께 다이빙하고 다이빙 이야기를 나눈 지난 시간, 그동안 쌓아온 우정과 신뢰에 가슴이 벅찼다. 눈물이 났다.

200번째 다이빙 축하 ‘손수건’을 펼치고 있는 버디. 조혜정 기자
200번째 다이빙 축하 ‘손수건’을 펼치고 있는 버디. 조혜정 기자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비다이버와는 하기 힘든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 나도 바다에선 처음 만난 사람조차 편하게 대할 수 있다. 더구나 바닷속에 들어가면 물 밖에서처럼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 없기에, 같이 다이빙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안전과 즐거움을 섬세하게 살피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 시간과 경험을 공유해온 내 모든 바다 친구들, 오래오래 안전하고 행복하게 다이빙하시라. 그리고 200로그가 2000로그가 될 때까지 나랑 같이 놀아주시라.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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