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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3] 이제 숫자와 싸우지 않는다 / 이정연

등록 2017-12-27 18:37수정 2017-12-27 19:41

이정연
산업팀 기자

몇 ㎏으로 훈련을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팔을 완전히 편 채로 바벨(역기)을 잡고 무릎과 허리를 굽힌 자세에서, 무릎과 허리를 펴 바벨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데드리프트’ 이야기다. 스트롱 퍼스트 프로그램을 접하고 아주 초반에 훈련했을 때 처음 든 무게는 30㎏ 남짓 됐을까? 어렵지 않은 느낌이었다. 물론 팔과 어깨 힘보다 허리와 허벅지, 복부의 근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훈련이 쉽지는 않았다.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는 무게가 아니었는데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

파워존 합정점에서 97.5㎏의 바벨(역기)로 훈련하고 있는 모습.
파워존 합정점에서 97.5㎏의 바벨(역기)로 훈련하고 있는 모습.

너무도 간단해 보이는 자세고, 운동이다. 실은 하계올림픽에서 제일 지루하다고 느꼈던 종목이 역도였다. 선수들이 용을 쓰다 쓰다 머리 위로 바벨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것, 그것뿐이었다. 장미란 선수가 2008 베이징올림픽 때 메달권에 들어서면서 온 국민이 숨죽여 그의 경기를 봤지만, 관심이 딱히 가지 않았다. 그가 금메달을 거머쥐었을 때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라 여겼다.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라는 생각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충분히 모르는데도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싫어했다. 하지만 이제 반성한다. 그게 바로 나다. 본격적인 역도는 아니지만, 데드리프트 훈련을 해오며 느낄 수 있었다. 이 운동이 얼마나 복합적인 신체 능력과 압박감에 굴하지 않는 정신의 강함을 필요로 하는지. 역도 선수들이 ‘용쓰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던 순간은 선수들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도전에 직면해 돌파하는 순간이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지난주 97.5㎏을 들어 올렸다. 세자리 숫자가 가까워졌다. 80㎏ 후반대 데드리프트 훈련을 하면서 마음에 부담이 갔다. 만만치 않은 무게였고,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렇게 두달 가까이 매주 2.5㎏씩 증량했다. 세자리 숫자가 코앞이다.

바벨과 케틀벨을 이용한 운동을 하면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많아졌다.
바벨과 케틀벨을 이용한 운동을 하면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많아졌다.

그러나 내가 도전하는 대상은 절대 숫자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나에게 이제 도전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 싸우는 과정이다. 도전을 해내는 나를 뇌리에 그리며 차근차근 도전해가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운동 덕후’가 됐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항상 줄이려 노력했던 몸무게, 항상 늘리려 노력했던 바벨과 케틀벨의 무게 등은 중요한 게 아닌 게 됐다. 이제 숫자와 싸우지 않는다. 더 강해질 수 있는데도 포기하려고 하는 나와 싸운다. 이렇게라면 ‘운동 덕질’은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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