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디터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정책(?)이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면, 대선 시계가 빨라진 올해 대선 정책 중 가장 주목받는 건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기본소득을 대선 무대에 끌어올린 선두주자다. 5년 전이었다면 그저 ‘몽상가의 뜬구름’으로 치부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관심을 받게 되는 건 그만큼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자리 부족으로 소득 수단이 점점 줄어들고, 그 결과 점점 벌어지는 소득불균형이 바탕이다. 유종일 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처분소득은 상위 10% 가구가 전체의 29.1%를 차지하는데, 순자산은 상위 10%가 전체의 43.7%를 차지한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보면,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하게 된다. 이런 불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능력주의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침식한다”고 했다. 2015년 졸업식 때 교정에 나붙은 ‘연세대 나오면 뭐하나, 어차피 백순데’라는 플래카드, 초등학생들 사이 장래희망 1위가 ‘건물주’라는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가 피케티의 명제를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케티는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건 브누아 아몽(사회당) 후보 캠프에 합류해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안을 대입하면, 4인 가족인 나는 가구당 연간 320만원(토지배당+청소년배당)을 받게 된다. 집을 소유하고 있으니, 기존의 (지방세인) 재산세 외에 (국세인) 국토보유세를 또 내야 한다. 하지만 아마 새로 내는 세금이 새로 받는 기본소득을 넘진 않을 것 같다. 공약을 보면, 전체 기본소득을 위한 세원이 중앙정부 재정관리 7~8% 감축,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 440개 기업 법인세율 8%포인트 인상, 10억원 초과 소득자(6000여명) 최고세율 10%포인트 인상 등 부담이 극소수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세금을 뽑아낼 때, 조세저항은 둘째 치고 제품 가격 및 집세 인상, 소득금액 축소 등 어떤 형태로든 전가하지, “우리 돈 가져가 기본소득에 써주세요” 할까? 그리 쉽다면 이전엔 왜 못했을까? 정부 재정 70% 이상이 경상비인데, 7~8% 감축하면 기존 복지재정에는 전혀 피해가 없을까? 자칫 나 같은 중산층이 별 도움도 안 되는 푼돈 받느라 아이들 급식 부실해지고, 차상위 계층 난방비 빼앗는 건 아닐까? 의문이 이어진다. 한 토론회에서 이 시장에게 이를 질문했으나, 시원한 답변을 듣진 못했다. 그럼에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산업화 시대의 논리였고, 이젠 ‘일하지 않는 자도 먹어야 한다’. 모든 이들이 적정 규모의 기본소득을 계속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우리 삶과 사회는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는 맹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물질적 안정성이 구축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먹고살기 위해’라는 면죄부를 벗고 ‘가치있는 삶’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일 것이고, 다양성으로 연결될 것이고, 물질만능주의를 완화시킬 것이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이다. 범죄도 줄어들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적 수요가 보장돼 경기변동 위기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게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다시 ‘돈’이다. 기본소득이 ‘기본’이 되려면 1인당 월 50만원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전국민에게 제공하면, 연 300조원이다. 올해 예산이 400조원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아마 ‘기본소득’보다 ‘기본세금’을 지금보다 더 내야 할 것이다. 기꺼이.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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