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에디터 상하이 루쉰공원(훙커우공원) 근처 산인루 골목에는 작가 루쉰의 옛집이 있다. 루쉰이 1933년부터 19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며 글을 썼던 낡은 3층집은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지만, 이웃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산다. 상하이식으로 긴 장대에 내걸려 나부끼는 빨래들이 정겹다. 근처 루쉰공원은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를 점령한 뒤 전승기념식을 열던 일본군 요인들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의 현장이다. 이 근처를 걸으면 그 시절 상하이에서 김구, 윤봉길,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조소앙, 김산, 김익상, 오성륜을 비롯해 수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임시정부를 꾸리고 독립운동과 무장투쟁을 계속하며 중국인들과 교류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며칠 전 오랜만에 찾아간 중국 상하이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짙었다. 사업가, 예술가, 회사원 등 여러 중국인과의 대화마다 한-중 관계를 이야기할 땐 어김없이 사드가 등장했다. 텔레비전 연예 프로그램이나 거리의 광고판마다 흔하던 한국 연예인 광고모델도 볼 수 없었고, 중국 텔레비전과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한국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 28일 경북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받기로 롯데와 계약을 체결하고, 사드 배치를 본격적으로 서두르면서 중국 관영 언론에선 “한국 차, 휴대전화 사지 말자” “한국과 준단교” 등의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롯데에 대한 불매운동과 압박도 시작되고 있다. 사드가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의 핵심이며 엑스밴드 레이더를 통해 중국을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반대 입장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교·안보 사안인 사드 문제에 대해 경제·문화적 보복으로 대응하는 중국의 이런 조처들은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이 무슨 자격으로 개입하냐’는 분노를 일으키며 오히려 한국 보수세력 결집에 이용되고 있다. 미국에서조차 사드의 미사일 요격 유효성은 분명히 검증된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사드 체계가 요격미사일을 교란하는 북의 ‘기만탄’에 속수무책이며, 남북처럼 좁은 땅에서 서로 맞붙어 있는 지형적 특성상 최대 사거리 200㎞, 요격 고도 40~150㎞인 사드로는 북의 중거리 미사일에 대처할 수 없다는 한계 등을 분명히 지적한다. 아울러 사드 배치는 한국을 미-일 군사동맹과 단단히 묶고, 중국과는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대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 없이 비밀작전처럼 실행된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의 문제야말로 박근혜 국정농단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이제 보수세력들은 사드 배치 반대를 ‘중국의 개입’ 틀로 바꿔 선전하고, ‘사드가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가’라는 정당한 문제 제기를 비애국, 종북, 한-미 동맹 파괴로 몰아 덮어버리려 하고 있다. ‘사드가 과연 한국의 안보에 필요한 무기인지’를 따져볼 사회적 논의 과정은 실종돼버렸다. 외교·안보 정책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기본도 잊혔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자주독립을 위해 조선 민중들이 일어서 피를 흘린 지 98년 뒤, 3·1 만세운동의 정신 위에서 세워진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인하는 세력이 시청 앞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은 섬뜩하고 우울하다. 친일에서 친미로 간판만 바꿔 달고 외세와 결탁한 채 안으로는 약자를 희생양 삼고 반대 세력은 빨갱이로 몰면서 너무나 오래 권력을 휘둘러온 이들이 위기에 몰리자, ‘사드 반대=종북’으로 몰면서 극우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지금 ‘태극성조기’ 집회와 사드 논란, 국정교과서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할지 상상해보자. 친일과 독재, 냉전의 망령에서 우리 미래를 구하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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