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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사드로 본 한미동맹 / 박병수

등록 2017-06-11 20:26수정 2017-06-11 20:31

박병수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한국과 미국은 동맹이지만, 그 관계가 평평하지 않다는 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한-미 간 이해가 부닥칠 때 주로 미국의 입장이 관철되니,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역학관계에 따른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하면서도 이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에서 그런 현실이 또다시 강요되는 걸 지켜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국방부의 보고를 받고 이것저것 따져보는 건 당연하다. 이전 정부에서 물려받은 계속사업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과정에서 밝혀진 건 거짓과 은폐 같은 부도덕성이었고 절차적 흠결이었다. 국방부는 그동안 주한미군에 사드 배치지역으로 공여한 땅이 32만㎡라고 했다. 법에 33만㎡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를, 33만㎡ 미만이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돼 있다. 그래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발표를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국방부가 공여할 계획이었던 땅은 모두 70만㎡지만, 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해 32만㎡만 우선 미군에 제공했다고 한다. 사기극이고 기만이다. 조사해서 바로잡을 걸 바로잡는 건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일을 하는 데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환경영향평가 실시 검토에 대해 미국에서 의구심과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거듭 “국내 절차를 진행하는 것일 뿐이고 사드 배치 결정을 바꾸려는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에서 미 정부 인사와 의원들을 만나 이야기했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미국까지 다녀왔다. 한-미 갈등은 늘 한국 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크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의 칼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 슬슬 의심스러워진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어떻든 한·미가 같이 결정한 일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문제 제기한다? 기분 나쁠 수 있다. 게다가 사드는 “미국에서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나들며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는”(지난해 12월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무기 아닌가. 또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미-중 대립의 상징이 됐다. 한국 정부의 이의제기엔 친중 성향이 반영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논란의 책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 한·미는 지난해 2월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뒤 연내 배치를 목표로 ‘속도전’을 벌였다. 국방부의 사기극은 이런 ‘초단기 납기’를 맞추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서 저질러졌다. 정권 교체기 민감한 쟁점에 대한 결정을 국민의 새로운 위임을 받은 차기 정권에 맡기는 건 굳이 말이 필요 없는 관례다. 그러나 철저히 무시됐다. 사드 배치를 추진하던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9일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로 직무정지 상태가 됐다. 올 2월 롯데와 부지교환 계약 체결, 3월 사드 일부 국내 반입이 그런 비정상 상황에서 강행됐다. 사드 발사대 2기의 성주 배치는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파면 결정 뒤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미국이 “황교안 대행체제에서 결정된 일로 난 모르는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국내외 언론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게 동맹국이 할 일은 아닐 것 같다. 국내 절차 문제라고 했으니, 여유를 갖고 기다려보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당장 오늘내일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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