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희 디지털뉴스팀 기자
노래하듯 말하면 덜 버벅댄다. 춤추듯 걸으면 잘 안 넘어진다. 어떻게 매 순간 노래하고 춤추듯 살겠냐만 말문이 자주 막히고 실제로 자주 자빠지는 나는 그랬다. 리듬 때문일 것이다. 음악의 첫 번째 재료, 리듬.
앞서 ‘몸을 꽃잎처럼 펼치고 싶어서 가장 먼저 내 몸이 꽃이라는 생각을 버렸다’는 이상한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 음악에 관한 얘기였다. ‘하늘을(소) 업신여기는(능)’ 자신만만한 여름의 아름다움이 요즘 길마다 다홍빛으로 펴 있다. 시들기 전 모습대로 툭 떨어지는, 지는 모습도 당찬 능소화.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하늘을 좀 업신여겨도 천벌을 면할 것 같은 뛰어난 댄서일수록 자기 몸이 춤의 꽃이라고 여기기보다 음악에 집중하고 심지어 복종한다. 꽃도 자기 색과 향보다 계절, 바람, 빛, 비 같은 환경에 더 집중할지 모르겠다. 나를 살리는 건 결국 나를 둘러싼 세계에 있다는 감각이 아름다움의 비밀인지.
탱고 음반들과 요즘은 (발레 하느라) 잘 신지 않는 탱고 슈즈. 가운데 있는 음반은 최고의 피아노 제조사로 꼽히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에서 낸 탱고 앨범이다. 탱고 슈즈는 그랜드피아노처럼 기능하지 않을 때도 아름답다.
탱고와 발레를 춤이 아니라 음악으로 처음 만났다. 지금은 음반을 모으지만 오랫동안 유튜브에 넘치는 클래식은 국가가 내게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었다. 어렵거나 그저 그런 날들을 술보다 싸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데 음악만 한 것이 없었다. 힘자랑에 그치는 강함과 탄성을 질러 표현하는 세련된 강함을 구분하게 해준 바이올린 연주자 기돈 크레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출신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중동 젊은이들로 꾸려진 오케스트라를 이끈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두 사람의 탱고가 나를 먼저 흔들었다. 아르헨티나 하층 노동자, 디아스포라의 것이던 탱고를 오늘날 ‘현대의 고전’으로 만든 아스토르 피아졸라 밴드의 피아니스트였으며 여전히 새 음반을 내고 있는 파블로 지글러의 음악도 컸다.
발레를 시작한 건 슬플 때 주로 듣던 쇼팽 때문이다. 쇼팽의 녹턴, 왈츠, 마주르카 등을 관현악으로 화사하게 표현한 발레음악 ‘레 실피드’가 아니었다면 발레를 계속 몰랐을 수도 있다. 각별하게도 발레는 기초 동작마다 따로 이름 붙은 음악이 끊임없이 작곡될 만큼 섬세하고 정성스럽다.
음악의 네 요소는 리듬, 멜로디, 화성, 음색. 고유한 음색을 가진 두 사람이 각자 한 발로 리듬을 타고 다른 한 발로 멜로디를 표현하면서 만드는 화음이 탱고다. 실내악으로 치면 이중주. 독주와 달리 이중주는 짝의 소리를 들으면서 나의 소리를 내야 한다. 타인에 대한 감각이 자유를 테두리 치는 것이다. 이중주를 들으면 자유의 생김새를 비로소 보게 된다. 무정형과 무질서가 자유는 아니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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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원래 남성끼리 추던 춤으로 알려진다. 최초의 탱고인들인 아르헨티나 항구 노동자의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에리크 사티의 짐노페디 1번에 맞춰 춤추는 댄서들. 탱고를 위해 작곡되지 않은 음악도 탱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