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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5] 나의 육체, 나의 축제 / 석진희

등록 2017-07-19 18:22수정 2017-07-19 21:12

석진희
디지털뉴스팀 기자

유머는 만능 콩깍지. 웃으면, 어색한 긴장은 지워지고 서로에게 집중되는 긴장이 새롭게 채워진다. 긴장은 유머와, 유머는 심각함과 비례하던데.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보다 매사에 심각한, 그래서 재미없을 수도 있는 사람이 훨씬 재밌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심각하고 진중할수록 더 많이 알고 싶어 하고, 아는 게 많을수록 저절로 재밌다. 유머로 조합될 요소가 그만큼 늘어나니까. 고도로 체계화된 기법의 훈련이 필요한 발레는 말할 것도 없고, 소셜댄스인 탱고 역시 ‘3년을 춰도 초급’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까다롭다. 심각하게 어려워서 빨리 늘지도 않는 발레와 탱고에 나는 그래서 재미를 느꼈다. 알아야 할 게 많아 오래 보고 싶은 관계가 될 것 같았다.

국어사전엔 없지만 ‘손호흡’이란 말을 쓰면서 춤을 춘다. 코와 입, 나아가 손이 숨쉰다고 상상하면서까지 넓은 호흡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어사전엔 없지만 ‘손호흡’이란 말을 쓰면서 춤을 춘다. 코와 입, 나아가 손이 숨쉰다고 상상하면서까지 넓은 호흡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스가 공유된 집단에서 주로 성공하는 유머는 꽤 배타적이다. 은어와 성격이 비슷하다. 탱고 은어를 룬파르도라고 한다. 탱고는 춤과 음악 그리고 시(가사)로 이뤄지는데 ‘탱고 시’엔 스페인어 사전에 없는 룬파르도가 자주 쓰인다. 보르헤스는 밀롱가(2박자의 빠른 탱고)를 위한 시집(<여섯 개의 현을 위하여>, 1965)을 내면서 룬파르도를 의도적으로 배제할 만큼 이 은어에 은밀하게 “난무하는 감성”(보르헤스)을 의식했다.

발레 시간에 듣는 가장 좋아하는 은어는 ‘손호흡’이다. 어려운 동작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게 된다. 힘을 주면서 몸이 굳는 것. 그런데 깊고 규칙적인 호흡이 어려움을 해결할 때가 많다. 코와 입, 나아가 손이 숨쉰다고 상상하면서까지 넓은 호흡을 해야 한다. 발끝으로 서서 위태롭지만 버텨야 할 때, 머리 위로 서로 닿지 않을 만큼 두 손을 모았다가 심장처럼 손끝을 위아래로 작게 콩닥대면 훨씬 버티기 쉬워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다음 은어 둘은 발음이 비슷하다. ‘안기’. 탱고는 상대방을 안고, 발레는 대기를 안는다. 어깨를 고정하고 팔을 펼칠 때 공기를 안아주듯 해야 팔근육 하나하나가 올라붙는다. 몸의 무게중심인 코어 근육도 등 전체로 코어를 안아서 붙든다. ‘앉기’. 탱고의 모든 걸음엔 투명의자가 놓여 있다. 체중이 실린 다리를 의지해 의자에 걸터앉듯 골반을 앉혀야 품위 있고 안정적인 자세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발레도 점프한 뒤엔 의자에 살짝 내려앉듯 착지한다.

연인처럼 안고, 휴식처럼 앉아서 춤춘다. 혼자 출 때조차 대기를 껴안을 수 있고, 춤은 불편하게는 출 수가 없다. 혼자 웃는 건 유머가 아니듯이 춤을, ‘너’를 안고 웃을 때 어두운 삶에도 폭죽이 터진다. <끝>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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