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5년 전부터 별 근거도 없이 “이제 곧 동네빵집의 시대가 온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지만, 딱히 거창한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회사에서 1년에 한 차례 직원들에게 주는 ‘복지포인트’를, 하필 지난해에는 마감날이 닥치도록 미처 쓰지 못했을 뿐이다. 또 급하게 쓸 곳을 찾다 보니 하필 어느 요리학원의 ‘제빵자격증대비반’ 등록 안내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래서 2016년 12월10일부터 2017년 3월18일까지, 13강짜리 제빵 수업 과정을 수료했다. ‘정규 교육과정’을 나름 성실히 마친 덕택에 ‘빵 만드는 사람’이란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다.
지난해 12월 어느 토요일 서울 강남역 근처의 학원에서 구운 브리오슈들. 의도했던 눈사람 모양보다 의도치 않은 오리 모양이 되어버린 빵들이 더 많다.
아마 ‘기술’(craft)을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단지 생존을 위해 억지로 익히고 수행해야 하는 기술과는 다른 차원의 기술을. 누구나 무언가를 매만지고 다듬는 데 저도 모르게 몰두하고, 또 그것을 더 잘하려고 노력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생각을 빌리자면, “인간은 누구나 ‘장인’이 되려 노력하는 존재다.” 빵을 좋아하다 못해 얼굴과 체형까지 빵을 닮아버린 사람으로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빵처럼 풍요로운 게 또 있을까. 브리오슈는 이스트를 넣어 반죽을 부풀린다는 점에서 빵의 성격을 지녔지만, 달걀과 버터가 잔뜩 들어가기 때문에 과자나 케이크로 취급받기도 한다. 뜬소문이라지만, 프랑스 대혁명 때 “빵을 달라”는 민중들의 요구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케이크가 바로 브리오슈다. 그래서일까, 브리오슈는 왠지 생존을 위해 씹어 삼켜야 하는 빵의 이미지와는 다른, 삶의 풍요로움을 음미하게 해주는 빵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나마 잘 나온 브리오슈를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달걀과 버터가 많이 들어가는 브리오슈는 간식으로 먹기에 딱 좋은 빵이다.
그러나 브리오슈든 식빵이든 진정한 삶의 풍요로움은 그것을 직접 만들 때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달걀과 버터가 잔뜩 들어간 브리오슈의 반죽은 찐득찐득해 다루기가 무척 까다롭다. 눈사람 모양으로 만들려면 몸통 반죽에 구멍을 파고 올챙이처럼 생긴 머리 반죽을 심어주기까지 해야 한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사투를 벌인 노고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오븐 속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빵을 볼 때에야 스르르 풀어진다. 만들어놓고 보니, 머리만 한쪽으로 치우친 놈, 몸 전체가 옆으로 누운 놈 등이 영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어쩌랴! 내 손으로 만든 놈들인걸. 아직 모자란 실력을 빵과 함께 씹으며 또다시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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