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에디터 “도대체 독일 육사에서 뭘 배웠나?” 나는 박찬주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소식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77년 육군사관학교(37기)에 입학한 박찬주 대장은 독일 유학길에 올라 독일 육사를 졸업했다. 그는 2001년 독일 육군청에서 교환교관으로 일한 적도 있다. 이런 교육과 경험 덕분에 박 대장은 독일군의 전통과 교육, 훈련, 지휘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독일군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지휘 원칙은 ‘내적 지휘’ 개념이다. 내적 지휘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군을 육성하고 ‘제복 입은 시민’을 구현하는 것이다. 독일군은 군인 상호간의 인격 존중과 소통을 통한 지휘 방식을 강조한다. 독일군은 장교가 병사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독일군에서는 병사의 넥타이가 틀어져 있을 때 장교가 손으로 직접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넥타이는 복장의 일부분이고 복장은 인격의 연장이다. 따라서 넥타이에 손을 대는 것은 몸에 손을 대는 것과 같다. 장교들이 병사의 넥타이에도 손을 대지 않는 만큼 인격을 존중하는 군대가 독일 군대다.”(독일 육사 출신 김국헌 예비역 육군 소장의 칼럼) 장교와 병사의 교육과 생활이 엄격히 분리된 한국과 달리 독일 육사 교육은 훈련병 과정부터 시작한다. 독일 육사 생도들은 야전부대에서 병사들과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이들은 훈련병 과정, 이등병 과정, 일병 과정을 거친 뒤, 분대장 과정과 소대장 과정을 이수하고 소위로 임관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일군 장교는 병사의 처지를 이해하고 병사들이 어떤 상관을 존경하는지 배운다. 독일군은 명령에 무조건 절대복종하지 않는다. 독일군은 인간 존엄성이나 인권을 해치는 명령을 받을 경우 불복종할 권리를 주고, 그런 명령을 내린 상관을 신고하도록 했다. 이는 독일군이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비합리적이고 비인도적인 명령을 맹종하다 빚은 패전과 학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독일군에서 ‘전자팔찌 채우기’나 ‘뜨거운 떡국의 떡을 맨손으로 떼어내기’ 같은 인권침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찬주 부부 갑질’에 분노한다. 또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장까지 올라갔을까”라고 의아해한다. 나는 ‘저런 사람’이 진급하는 게 한국 군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군 장성 인사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능력 본위, 적재적소 같은 보도자료의 미사여구 뒤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진급 경쟁이 숨어 있다. 장군으로 진급하려면 특히 중령 대령 때 핵심 보직을 맡아야 한다. 장교들은 ‘진급은 경쟁, 보직은 전쟁’이라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장군(준장)이 되더라도 소장-중장-대장으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급감하는 피라미드 구조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너를 죽여야 내가 올라간다’는 정글의 생존 방식이 거칠게 작동한다. 이런 인사 구조에서는 사적 인맥, 파벌주의와 줄서기가 없어질 수 없다. 수십년 동안 치열한 ‘진급경쟁 보직전쟁’에서 살아남은 박찬주 대장은 20대 때 독일 육사에서 배웠던 ‘병사=제복 입은 시민’이란 사실을 시나브로 잊고, 공관병을 몸종 취급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박찬주 부부 갑질’에는 개인, 군대문화,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다. 머지않아 있을 고위장성 인사에서 박찬주 대장은 보직을 못 받고 전역할 가능성이 크다. 그가 군복을 벗어도 ‘저런 사람이’ 진급하는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갑질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군 인사 구조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란 국정철학과 양립할 수 없는 적폐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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