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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그 많은 국방비 떡 사 먹었느냐 / 권혁철

등록 2017-09-03 18:50수정 2017-09-03 22:39

권혁철
지역 에디터

“근 20년간 북한보다 수십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래도 한국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1970년대를 어떻게 견뎌왔겠느냐. 그 많은 돈 우리 군인들이 떡 사 먹었느냐. 옛날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드는데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최근 이 말이 문재인 대통령 발언과 겹쳐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열린 국방부 핵심정책 토의(업무보고)에서 “북한과 남한의 지디피(국내총생산)를 비교하면 남이 북의 45배에 달한다. 절대총액상으로 우리 국방력은 북한을 압도해야 하는데 실제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며 “그 많은 돈을 갖고 뭘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발언과 문 대통령 발언 내용은 언뜻 볼 때 비슷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꽤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던 예비역 장성들을 겨냥했다. 그는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라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말을 들은 예비역 장성들은 한동안 밤잠을 못 잤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과 예비역 장성들의 갈등은 더욱 격심해졌다.

문 대통령은 사람(예비역 장성, 군 지휘부)이 아니라 문제(더 많은 돈을 쓰고도 국방력이 북한을 압도하지 못하는 현실)를 겨냥했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했다.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문제를 바라보는 문 대통령의 시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국방개혁을 독려했다. 이런 문 대통령에 맞서 예비역 장성이나 군 지휘부가 반발하긴 쉽지 않다.

11년 전 노 전 대통령은 왜 격정적인 어조로 군을 질타했을까.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초 남북간 병력 수, 항공기, 탱크 등의 수를 단순 비교해 놓고 우리 군사력이 북한보다 휠씬 약하다는 국방부 보고를 듣고는 ‘대통령을 바보 취급 하는가 싶어 불쾌했다’고 한다. 2004년 봄 청와대는 남북 군사력 비교와 남북 전쟁수행능력 비교를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맡겼다.

이 연구 결과에 따라 예산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육해공군은 ‘우리가 열세한 것으로 해달라’고 국방연구원에 로비했다. 군 지휘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연구원들이 쓸데없는 연구를 해서 군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압박했다. 2004년 6월 국방연구원은 육군은 북한에 열세, 해군과 공군은 대등하거나 우세하다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가 ‘국방부 압력으로 조작된 데이터에 근거해 작성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회의를 열어 실질적인 남북 전쟁능력을 비교할 수 있는 분석 모델을 만들어 납득할수 있게 보고하라고 몇차례 지시했다. 하지만 이 지시는 결국 이행되지 않았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군의 압력으로 남북 군사력 평가 작업이 왜곡됐다. 군은 안보 위협에 대한 해석을 계속 독점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 과정을 겪었고 지켜봤다.

참여정부의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남북 군사력 평가 작업을 군 내부에서 비공개적으로 알음알음 할 게 아니라, 평가 결과를 <국방백서>에 공개했으면 한다. <국방백서>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남북 무기 수를 나열하는 ‘단순수량 비교방식’(bean counting)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안보 위협의 객관적인 실체를 설명해야 한다. 국방예산을 어디에 왜 얼마나 투입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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