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디지털사진팀 기자
달리기를 사랑하는 러너에게는 마라톤 완주가 꿈이다. 자전거 라이더에게는 마라톤에 해당하는 그란폰도(Granfondo)가 있다. 그란폰도는 이탈리아어로 ‘위대한 인내’ 또는 ‘기나긴 여정’이란 뜻이다. 로드 자전거를 타고 비경쟁 방식으로 정해진 거리를 시간 내에 완주하는 대회다. 지난 16일 거리 135㎞, 누적 상승고도 3300여m에 이르는 ‘무주 그란폰도’에 참가했다. 7개의 고개를 7시간 반 안에 넘어야 한다.
아침 7시 2000여명의 라이더들과 출발선에 섰다. 약간의 긴장감과 흥분이 교차한다. 장거리 라이딩에 나서기 전 이 긴장감을 사랑한다. 출발 신호에 따라 일제히 출발한다. 자연스럽게 펠로톤(Peloton. 프랑스어로 무리, 집단을 의미한다)이 형성된다. 초반부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무겁다. 세번째 고개 우두령(730m) 중반을 오르면서 왼쪽 종아리 근육에 경련이 왔다. 다섯번째 부항령(610m) 고개에서는 오른쪽 종아리와 허벅지, 발바닥까지 근육 경련이 생겼다.
필자가 16일 ‘무주 그란폰도’ 두번째 고개 도마령(800m)을 힘들게 넘어가고 있다. 한유정 작가 제공
가장 악명(?) 높은 코스인 여섯번째 고개 오두재(922m)에 들어섰다. 사이클 컴퓨터는 경사도 10~20%를 가리킨다. 체력은 거의 바닥났다. 똑바로 갈 수 없어 ‘와리가리’(오르막을 갈지자로 오르는 행동)로 오른다. 속도는 시속 5~6㎞. 걸어가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3분의 2 지점을 왔을까. 가뜩이나 좁고 노면 상태가 안 좋은 오두재길이 빨래판(시멘트 포장에 가로로 줄이 그어진 도로)으로 변했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페달에서 클리트를 뺐다. 치욕스러운 끌바(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가는 행동)다. 200여m를 걸어서 올라갔다.
마지막 오르막길 적상산(881m)에 진입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9㎞의 오르막. 아무 생각이 없다. 근육 경련이 온몸을 돌아다닌다. 고개를 숙이고 페달만 굴린다. 빨리 이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1시간을 넘게 올라 계측 지점을 통과했다. 자전거에서 내리자마자 근육 경련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10분 넘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완주기록은 7시간11분52초. 아쉬운 성적이다. 7시간이 넘는 고통. 긴 오르막을 오르면서 ‘다시는 그란폰도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말하지만, 대회가 끝나면 나도 모르게 다음 그란폰도 일정을 찾고 있다. 왜 비용을 치러가며 이런 고통을 즐기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몇 년 전 드라마에서 유행했던 대사를 읊조린다.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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