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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1] 헬멧을 샀다, 온몸이 들썩였다 / 김지숙

등록 2017-11-15 17:48수정 2017-11-16 08:47

김지숙
디지털뉴스팀 기자

사실 자동차도 운전해본 적이 없다. 나이 서른에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것은 그래도 자격증 하나는 갖춰야겠기에 도전한 것일 뿐. 그 뒤 내 면허는 오랫동안 ‘장롱 신세’였다. 그런 36년 뚜벅이 인생을 종 치게 한 시작은 텃밭이었다.

지난여름, 베란다 화분에 상추니 방울토마토를 키워 먹다가 문득 텃밭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엔 서울 근교에 100평 땅을 일구는 ‘도시 부농’이 있었으니, 앞선 ‘덕기자 덕질기’에서 보았던 그 밭 주인이다. 잡초라도 뽑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주말농장 농부들의 엄격한 심사 끝에 드디어 땅 한 귀퉁이를 얻었다. 의욕이 앞서 일은 저질렀는데 집에서 14㎞ 정도 떨어진 경기도 고양시 텃밭까지 갈 길이 막막했다.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것도 한두 번이요, 수확물을 최대한 많이 가져오려면 나만의 ‘탈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텃밭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바이크 입덕’은 어느 여름날 저녁 오렌지빛 황혼을 타고 왔다. 그날 자주 들르는 카페 앞에는 하얗고 귀여운 스쿠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부드러운 흰색 앞면, 짙은 밤색 발판, 널찍하고 편안해 보이는 시트, 핸들에는 헬멧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걸려 있었다. 이 여유로움은 대체 뭐지. 노란 노을을 받으며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는 차체의 옆구리에는 ‘혼다 벤리 110’이라 적혀 있었다. 그야말로 ‘덕통사고’(교통사고처럼 우연하고 갑작스럽게 어떤 분야의 팬이나 마니아가 되는 것)의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바이크를 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건 타야 해’라는 결심이 생겨난 것은 불과 1~2분 사이의 일이었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본사 사옥 앞에 주차되어 있는 ‘월령 4개월차’ 혼다 벤리 110. 사진 김노경 기자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본사 사옥 앞에 주차되어 있는 ‘월령 4개월차’ 혼다 벤리 110. 사진 김노경 기자
일단 헬멧부터 질렀다. 지난해 <한겨레> ESC 지면에 ‘그럼에도 바이크’를 연재한 MOLA님의 조언이었다. “일단 헬멧을 사요. 그러면 얼른 타고 싶어져서 모든 일이 빨리 진행될 거예요.” 그의 말은 완벽히 옳았다. 바이크가 도착하기도 전에 헬멧과 바이크용 장갑을 사고 나자 온몸이 들썩였다. 지난 7월 ‘벤리’ 타령 3주 만에 드디어 나만의 바이크가 생겼다. 차대번호를 받자마자 이륜차 보험에 가입하고 번호판을 받았다. 이름도 붙였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영리한 로봇을 닮으라는 뜻을 담아 ‘다치코마’라 했다. 자, 이제 탈 일만 남았는데. 정말 ‘(스로틀을) 당기기만 하면 가’는 걸까?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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